공감대라는 되새김질로 새긴 우직한 황소의 다양한 모습들
“쟁기를 진 황소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투영하기 시작해 인간군상의 현실까지 왔다”
조각가 박민섭 작가

황소의 다양한 변조와 재해석.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은 조각에서 흔한 주제이지만, 황소를 인간으로 치환한 뒤, 다시 다른 동물의 요소를 결합하면서 황소의 속성을 강조하는 2차적 표현은 어지간한 해석력이 없으면 시도하기 힘들 것이다. 이 어려운 조건을 통과하는 경우는 보편적인 정서를 관통하는 공통적 기억이나 경험뿐이다. 황소라는 메타포 속에 숨겨진 인간군상들, 그리고 그 인간들의 삶에 대해 조각가 박민섭 작가는 타당한 각각의 이름을 붙여 두었다. 

상징성 담아 눈으로 읽는 조각, ‘황소’를 ‘인간’으로 의인화하기까지
조각가 박민섭 작가는 평론가들로부터 인간사의 사회성을 집약한 은유적 묘사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IMF이후 고단한 노숙자의 쪽잠을 형상화 한 <무거운 짐>, 엄마와 아이, 그리고 무너지는 삶을 상징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긴 <젊은 날의 초상>등을 발표한 2004년까지만 해도 그의 작품에는 무겁고도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의 숭고함을 인류의 보물 <모나리자>에 빗대어 경의를 표하거나, 수저를 정자로, 무쇠솥을 난자로 은유한 <생존게임>처럼 사실적 조형과 추상적 상징성을 결합하는 시도들이 그러했다. 박 작가는 조각과 소조의 요소들을 두루 사용한다. 점성이 좋은 유토로 조형하고 건조시키거나, 본을 떠 FRP로 캐스팅하며 사실적 구상에 추상적 관념을 심어 왔다. 미국 패권주의가 극에 달한 이라크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유아독존>, 도깨비의 전설과 국회의원의 작은 금배지에 물욕, 명예욕과 권력욕에 대한 직설적 상징을 가미한 <금 나와라 뚝딱>등이 그러한 맥락의 작품들이다.

이렇게 인간과 주변사물을 조형하던 것이 2009년 소의 해를 맞아 시작된 <황소걸음전>이라는 기획작품전에 참가하면서부터 ‘황소’로 표현하는 보편적 감수성과 높은 공감대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어려서 시골에서 자라나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와 외양간에 대해 잘 안다. 불혹을 넘어선 남자들이 흔히 그렇겠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소의 우직함과 헌신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쟁기를 진 소와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가장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황소는 박 작가에게 아버지의 자화상, 앞만 보는 성실한 가장이라는 영감을 주었고, 주제에 맞는 시대상을 반영했기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이후부터 더 많은 의뢰가 들어와 황소라는 피사체는 박 작가가 표현하는 적극적인 페르소나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소의 눈빛과 뿔, 근성 있는 몸통이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과 표정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소의 여러 이미지를 구체화할 소재 연구로 창작열 불태울 것
2015년에 들어서, 박 작가의 의인화는 새로운 양상을 띤다. 개인전 <쇠똥구리>에서는 박 작가의 페르소나들인 소들이 아버지의 헌신에 이어 새로운 업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공(空)>에서 스테인레스와 철, FRP로 조형된 황소는 마치 지구를 짊어진 아틀라스의 물리적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텅 빈 공이 상징하듯 정신적인 공허함에서도 동시에 짓눌리는 형국이다. <쇠똥구리>에서는 소의 부산물을 주워 굴려가며 서식지로 가져가 먹으며 삶을 이어가는 곤충의 자리에, 마치 시지프스의 고통스러운 영혼을 상징하는 듯 황소가 자리하여 거대한 구(球)를 굴리는 철학적 2차세계관을 보여준다. 박 작가는 청동과 오석으로 조형된 <삐에로>에서 소-피에로의 고단함을 다시 한 번 동일시하여, 웃음 속의 눈물에 대한 유머러스하면서 진지한 주제를 되새김질하게끔 한다. 박 작가의 최근 경향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맞짱>이라는 작품이다.

집의 가치를 측량하는 단위가 평이 아닌 칸이었던 시절 지어진 집들이 폐가가 되어 한옥고재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나무가 엮어져 늙은 소가 되었고, 젊은 소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광택이 있는 거친 철로 조형된 근육질 몸을 내세워 뿔을 맞대고 있다. 연륜의 나이테와 인공적으로 조형된 금속의 결이 재료의 물성을 장점 삼아 호각을 다투는 형국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이 모습은 한편으로 ‘인간’에서 ‘인간들’ 그리고 그들의 ‘갈등’으로 더 깊어진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로 박제되기보다는 표현방식이 더 깊어진 박 작가의 도전은 소의 정신적인 면과 중량감 외에도, 시대상에 따른 역할변화까지 다다랐다. “옛날 소들은 짐을 끌고 사람을 나르는 이동수단이었다. 그래서 자동차의 범퍼, 프레임 폐자재들로도 소 형상 제작을 실험하는 중이다.”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더라도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는 박 작가는 이 외에도 조형제작과 전시를 쉼 없이 진행할 예정으로, 4월 6일~23일까지 장은선 갤러리 초대전 및 6월 조각페스타 출품에 이어 큰 규모의 초대전들을 조율 중이다. 단순 메타포라기에는 적극적이고, 응축된 아이콘이라기에는 매우 다양한 그 황소들은 앞으로 어떠한 경로로든 인간계, 인간 군상을 향해 힘차고 우직한 발걸음을 계속할 것은 확실하다. 

Bull's various figures realized through a bond of sympathy
From the bull with a plough to father to various types of men
Sculptor Park Min-sub 

Personifying bulls in sculpture
Critics praised Park for his metaphoric depiction of man and society through bull sculptures. 'The Heavy Burden', for example, personified a homeless dozing when IMF hit Korea while 'A Portrait of Youth' in 2004 symbolized a young man's frustration. Also, he showed a respect to sublimity of mother through 'Mona Lisa' and turned a spoon to a sperm and a caldron to an egg in his other work 'Survival Game'. Park widely uses the elements of sculpting and modeling. He forms and dries with clay (mixed with oil) and cast it as FRP.

This process allows him to add an abstract concept to a realistic form of his work. 'Self-conceit', for example, criticized the hegemonism of the US over the Iraqi War while 'Gold! Come Out' satirized the desire for fame and power symbolized by the gold badge of lawmakers. These of Park's metaphoric depiction had a new life when he participated in the exhibition 'Bull's Stride' in 2009 (the year of bull). Park says "I'm a country-bred and knows well about stables and bulls and cows which often function as the breadwinner of a household. It also very much resembles the furrowed face and wrinkly hands of our devoted fathers. For me, a bull with a plough and the head of a household going to work in the morning with a briefcase in his hand have a lot in common." Park's works, for this reason, aroused a great sympathy from many appreciators and they paid close attention to each part, movement and expression of his bull sculptures. 

Continuous R&D in new subjects and materials for bull sculpture
In 2015, Park took out a new aspect of his works. In the solo exhibition 'Dung Beetles', the bull is carrying the Earth on his shoulder like Atlas. But despite the Earth, made of iron wires, is void, it still seems to weigh down the shoulders of the bull in full force. Park placed this bull where dung beetles who roll a ball to their habitat to depict a troubled soul. In other words, Park wanted to add a new element 'fate' to father's devotion. In the work 'Pierrot (Bull)', made of bronze and 5 minerals, Park equated the fatigued pierrot with the fatigued bull to express his feeling about tears in laugh. In his latest work 'Head to Head Fight', a wooden bull and an iron bull are putting their heads in an aggressive pose. Park's intention was to show a shift from 'a man' to 'men' and their conflict. Park says "In olden times, bulls were a means of transport who carried goods and men. I got a new inspiration from this and am experimenting on making car parts such as bumper and the frame into a bull." Finding a new subject for Park is as important as completing a work. Currently, Park is planning to participate in an invitation exhibition at Jangeunsun Gallery from 6-23 April, the International Sculpture Festa Seoul in June and other large invitation exhibi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