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을 차용하여 동양정신의 맥 ‘중도’를 조각하다
“시작과 끝을 모두 담은, 한 획을 긋는 삼라만상이 남긴 조화로운 흔적”
조각가 송일상 작가

동양철학의 방점을 찍는 정·중·동에는 정지된 외관과 끊임없이 요동치는 내면이 담겨 있다. 이 고요함 속의 에너지를 모아 화폭에 한 획을 긋는 미술적 가치를 오석 조각으로 표현한 송일상 작가는, 그동안 붓과 먹물로 표현되어 온 동양 화폭의 힘 또한 붓과 먹물의 이미지를 가진 조각으로 차용하고 있다. 이번에는 오랜 숙고를 거친 ‘중도’의 힘이 흰 벽면에서 힘차게 전진하는 모양새에, 풍부한 내면의 성찰을 담은 송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본다. 

백과 흑, 점과 선,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작되는 한 획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고과화상화어록>을 저술하며 명성을 높인 화가 석도(石濤)는 일획론에서 “일획(一劃)이란 수많은 획의 근본이자 삼라만상의 근본이 된다”고 하였다. 한 점에서 시작되는 하나의 선은 화법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며, 시작이기도 하지만 끝을 의미한다. 동서양 모두 첫 붓질의 중요성을 공감하지만, 공허함과 무위함을 정돈하며 한 점에서 파생되는 형상의 중요성을 이만큼 명쾌하게 정의한 사상은 드물다. 점에서 시작되는 선은 서화에서 백과 흑이라는 색감으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조각에서는 그 백과 흑의 미세하지만 대조되고 강렬한 성품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조각가 송일상 작가는 서양예술인 조각에서 서양의 것을 답습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동양의 정서와 향기를 담은 먹물을 소재로 제작하기 시작한다.

1999년 첫 개인전 이후 꾸준히 조형되는 그의 작품들은 흰 벽을 커다란 화선지로, 돌을 먹물로 붓질한 획으로 표현한다. 오석으로 조각된 그의 작품들은, 오래 숙고해 찰나로 그어진 한 획을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하며, 동양의 대표적인 그림인 수묵화가 주는 시각적 효과를 더 강화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관을 “고요함 속의 살아 숨 쉬고 요동치는 질풍의 영혼이, 견고한 표면과 조화를 이루어 흔들리는 자아의 균형을 이루면서 중도를 지키고자 하는 끝없는 몸부림에 대한 표현”이라 정의하는 송 작가는 규격화된 화선지를 벗어난 흰 벽을 하나의 우주 공간으로 생각하고 작가 자신을 자유롭게 부유하는 존재라 말하고 있다. 작가가 전하는 조각이라는 상징적인 피사체를 통해 조형된 동양적 사상도 의미심장하다. 흑백의 서사가 담긴 <흔적>, <비움>, <쉼>은 흰 바탕과 검은 획으로 <정-중-동(淨-中-動)>에 이르게 된다. 오랜 숙고와 찰나의 획으로 시작한 검은 폭풍은 중용의 미덕을 알리며 긴 호흡을 계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옛 선현들의 교훈을 오석에 담아 성찰하는 철학은 계속될 것
송 작가의 흑백으로 대비되고 정형화된 색과 양감의 오브제들은 벽이라는 공간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움직임을 끝없이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동양의 선현들은 스스로 성정(性情)을 바르게 하고, 학문이든 예술이든 스스로 인격 도야에 힘써왔다. 그러한 동양 정신에 입각하여 오석이라는 재료로 조각하고 자아를 성찰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나의 예술을 표현하고자 함도 있으나, 예술을 통해 인격과 철학을 다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수많은 동양 철학자들이 지적했듯, 해답을 향해 나가가는 내면의 의문은 언제나 자아성찰을 독려하는 좋은 채찍질이 된다. 이것은 소재와 도구에서 영적인 면을 탐구하는 동양적 관점에서 유래된 셈인데, 묵묵히 정을 맞는 돌의 침묵 내면에 일어난 무한한 폭풍에도 주목하는 그의 작품으로 원만한 결실을 맺는다.

고전을 경배하는 작가의 철학은 존재에 대한 순환, 회귀, 성찰에 대한 확장과 재해석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격려와 염원의 발로에서도 이러한 관념을 가진 채 접근하고 있다. 그 관념은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잇는 상징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단이 되어,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며 직설적인 위로를 주기도 한다. “광복 70주년 행사에서 제작한 <여성인권수호 기원상>은 주제가 확실히 정해진 인물에 대한 묘사다. 충북 여성 협의회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이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그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덧씌워진 껍데기를 정화하고 벗겨주고자, 그들이 가장 맑고 어린 나이였던 소녀의 모습을 선택했다. 족히 20만 명은 되었을, 정신이 죽은 자들의 잔인함으로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겪어야 했던 그분들을 위해, 가장 순수한 마음을 지닌 채 지금의 생을 편안히 보내고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이렇게 미학적인 깊이를 자기수행으로 확장하며, 예술에 대한 신념 및 생을 향한 치열한 고뇌와 조화에 대한 관조로 담은 존재감은 앞으로도 동양의 사상을 바탕으로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이제껏 행위예술이나 1차원적인 작은 화폭에 담겼던 검은 획이 벽면의 선과 곡선으로 나아가며 우리의 시선 안에 들어올 때, 잔잔한 마음속에 일어나는 파동은 분명 송 작가의 ‘창작자로서의 정신’을 향한 큰 경배일 것이다. 마치, 송 작가의 가슴에 새겨진 일획과 중도의 울림처럼 말이다. 

▲ 조각가 송일상 작가

Enlivening the oriental spirit of 'moderation’
The sculptures that contain alpha, omega and the whole universe in harmony
Sculptor Song Il-sang

A stroke ignites dots, lines, white and black and everything
The Qing Dynasty painter Sukdo who wrote 'Gosanghwasangwha Quotation' said in 'Ilhoengnon (one stroke theory)' "A stroke is the root of many strokes and the whole universe." Regardless East and West, the first stroke of an art work seems very important and Ilhoengnon demonstrated this very well. The lines start from a dot can be explained as white and black in terms of colour. Sculptor Song Il-sang gave a much thought about the definition of the delicate yet strong characters between white and black and started to apply oriental sentiment and ink to western sculptures. Since his first solo exhibition in 1999, Song has used this application by using white walls for large rice papers and stones for ink brushstroke. His sculptures made of five minerals deliver a deeply contemplated stroke in three dimensions in order to strengthen the visual effect of oriental ink-and-wash painting.

Song explains "The soul breathing and shaking in silence makes a harmony with the solid surface to give balance to its inner self in the way to 'moderation'. I took the white wall as a space in the universe so that I can be floating free in it." Song's epic white and black also is well presented in 'Trace', 'Emptying' and 'Resting' by a black stroke on the white background that is passing the process of 'stillness - moderation - movement'. The black stroke was completed with a long contemplation and an instant execution and it delivers the virtue of 'moderation' through a deep and long breathing. 

Putting the lessons of ancient sages into five minerals
Song's black and white sculptures on the walls indicate a limitless imagination. He explains "Ancient sages went through the process of training their personality to be virtuous. I got an inspiration from this and applied it to the materials (five minerals) of my works in order to search my inner-self. In other words, I used these works as a means of expressing my art world and of the process of training my personality." This of Song's method seems to derive from the oriental way of seeking spirituality from materials and tools as the inner silence of the stone hit by a constant hammering of chisel arouses limitless gales and storms inside. It also is closely related to the expansion and reinterpretation of circulation, return and contemplation. It can, therefore, be a means of connecting the past and the present as one to provide a comfort to people suffering from pains.

Song explains "'The Statue of Women's Right', made to celebrate the 70th anniversary of independence, for example, was a symbol of comfort women (for the Japanese army) which I received a request from the Chungbuk Women's Association. As I wanted to embrace their pain and trauma, I made it into a girl statue to emphasize their innocence and purity. 200,000 women are estimated suffering from serving as enforced sex slaves and I wish those still alive a good and peaceful life." It is quite remarkable that an esthetic value of a work can be expanded to self-training and examination and to healing many others suffering from pain. And this of Song's contemplation on existence through strokes and lines in black and white will no doubt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