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2017년 대선,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누가 될까?

백종원 기자l승인2017.01.18l수정2017.01.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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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017년 대선,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누가 될까?
문재인․반기문․박원순․안철수․이재명․손학규 등 유력 대권주자 주목

지난달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의 압도적인 표차 최종 가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무정지가 이뤄졌다. 현재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정을 대신 진행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1월 초부터 증인 소환에 나서며 탄핵소추안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달 31일로 임기가 끝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신년사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법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직 대통령의 직무정지와 탄핵소추라는 상황을 맞은 대한민국은 그래서 더욱 다가올 19대 대선에 대한 기대가 더해지고 있다. 19대 대선의 날짜는 올해 12월 20일로 정해져 있었지만 다양한 정치적 이슈로 인해 1분기 내 탄핵소추안에 대한 결론이 나게 되면 빠르게는 상반기 안에 조기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 후보 출마를 준비하던 여러 후보들이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40일 넘게 이어진 촛불 정국 속에서도 국민들의 대부분은 지지정당을 정하지 않은 중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선거에서 중도층을 잡는 후보가 최종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분석 결과가 있듯 향후 대선의 방향은 아직 미지수다. 12월 초 진행되었던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주요 대권후보로 점쳐지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23.5%,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은 18.2%, 이재명 성남시장은 16.6%,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는 7.5%, 박원순 서울시장은 4.3%,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는 4.2%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이외의 잠룡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연합뉴스와 KBS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연초에 발표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가 21.6%, 반기문 전 총장은 17.2%, 이재명 시장은 11.4%, 안철수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4.6%,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3.4%, 박원순 서울시장이 3.1%를 기록했다.
 


문재인, 인권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자 더불어민주당 주류세력인 친문계의 리더
인권·노동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2017년 현재, 야권에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차기 대선주자로 손꼽히고 있는 문재인은 각종 다양한 여론조사에서도 여러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 중 1, 2위를 다투고 있다. 문재인은 2003년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역임을 시작으로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을 거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로,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기념사업에만 전념하며 야인(野人)으로 살아가던 그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 사상구에서 55%의 득표율을 기록, 화려하게 컴백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삶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나섰지만 51.6%의 득표율을 기록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3.6%의 차이로 패했다. 대선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의 초대 당대표를 지낸 문재인은 2016년 4.13총선 이후, 차근차근 대권 행보를 펼쳐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 더불어민주당의 최대주주이자 새로운 주류세력인 친문계의 리더로서 최고 실력자의 위치에 있다고 여겨 왔으며 작년, 11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이자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로서 정치적 역할을 꾸준히 이어왔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모 매체와의 대선주자 릴레이인터뷰에선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삼박자를 갖춘 대한민국을 원한다는 포부를 보이기도 했다.
 


반기문, 대한민국 최초의 UN 사무총장으로서 성실함 최대 강점
1944년 충청북도 음성 출생이자 한국인 최초의 UN 사무총장으로 널리 알려진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1970년 외부무에 들어가 1980년 외무부 국제연합과 과장, 1987년 주미국대사관 참사관 겸 총영사, 1992년 외무부 장관특별보좌관, 1996년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2000~2001년 외교통상부 차관,  2002년 외교부 본부대사, 2004~2006년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거쳐 2007년부터 2016년 연말까지 제8대 UN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 반기문은 UN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10년 동안 하루 평균 9.5개의 일정을 소화하는 성실함으로 인해 돋보이는 평가를 얻었다. 전세계 UN 회원국 193개 중 154개를 직접 방문하며 국가원수 등 정부 인사와 국제기구의 수장을 7,000회 이상 만나는 등 성실한 행보를 보인 것이 그의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정부기관 근무 경험은 있지만 국내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것 역시 여러 가지 계파로 얽힌 국내 정치 환경에서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식되어 반기문의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현재 다수 정당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박원순, 혁신가의 길을 고집하며 낡은 체제 청산 앞장
2000년 16대 총선에서 총선연대(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으로 인해, 대상자 132명 중 72.3%인 102명이 낙선됐다. 이 운동을 진두지휘한 이가 바로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이다. 박원순은 당시 ‘병역사항·재산변동·부패혐의, 선거법위반,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권 행위, 의정활동 성실성, 법안·정책에 대한 태도, 반의회ˑ반유권자적 행위’등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또한,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 기부문화의 대중화를 확립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2011년 가을, 단일화 후보 경선에 무소속으로 나서, 52.15%의 표를 얻었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를 7.19%차로 제치고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었다. 취임 이후, 전두환 경호 시유지 회수에 이어 대학생을 위한 주요 선거공약이었던 반값 등록금 실현(서울시립대)에 성공했다. 특히, 서울시립대의 2012년 고지서에 기재된 명목등록금을 50%로 삭감하기 위하여 서울시 예산 830억 8,000만원을 반영했으며 그로 인해, 서울시립대 학생들의 연 평균 등록금은 238만 7,500원으로 인하되었다. 2014년 대한민국 제6회 지방선거에서 56.1%의 득표율로 서울시장에 재선된 박원순은 2017년 시정활동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의 커리어에 있어, 한 가지 부족한 부분일 국회의원 경력 전무와 관련해선 “대한민국 국민은 기존 정치권에 대해 식상해하고 절망해 한다. 나는 시민운동이라든지 서울시장이라든지 오로지 혁신가의 길을 걸어왔다.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개혁한 사람을 국민이 심사숙고한다면 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어떻게 새로운 대한민국을 리드할 것인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과거 경험, 성취 등을 볼 때,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는 주자이다.


 


안철수, 기업가 출신 정치인으로 국내 정치 새바람 일으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창립하고 국내 컴퓨터 보안 분야에서 획기적인 실적을 달성하며 국내 대표 기업인으로서의 명성을 널리 알렸다. 이후 2008~2012년 아름다운재단 이사, 2011~2012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정치계에 입문한 것은 지난 2013년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였다. 이후 안철수 전 대표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상임고문을 거쳐 2016년 창당한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국내 정치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했으며 현재는 제20대 국회의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을 정도로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온 안철수 전 대표는 기업인 시절부터 꾸준한 추진력과 언행일치의 비전 등을 통해 확고한 지지기반을 획득하였으며 이로 인해 기성 정치세력에 환멸을 느끼던 정치 지지자들을 하나로 단결시켰다는 평을 얻었다.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 대립을 일삼던 기존의 정치계에서 말 그대로 새로운 지지기반을 개척한 것이다. 특히 작년 4월 펼쳐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신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좌석수를 획득하며 국내 정치사에 3당 체제를 열어젖힌 것 역시 안철수 전 대표의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재명,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 이어가
여러모로 파격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평소 거침없는 성격과 언행으로 유명하다. 또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지지층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자신의 소신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곤 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 2006년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 출마, 2008년 총선에서 성남시 분당구갑에 공천되어 출마했지만 막상 선거에선 모두 낙선했다.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활동을 이어오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51%의 전폭적인 표심을 얻으며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이후 2010년부터 6년 동안 성남시 시장을 지내며 성남시가 갖고 있던 약 5,700억 원의 부채를 모두 청산하고 성남시 3대무상복지정책(청년배당·무상교복·산후조리)을 효율적으로 실행하며 시정활동 초기에 있었던 수많은 행정가 및 전문가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난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가장 먼저 탄핵을 주장하며 광화문 촛불시위의 선두주자로 나섰으며 특히, 그 연설이 각종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게시되어 진보성향의 젊은이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11월을 기점으로 이재명의 지지율 또한 매우 높아져가고 있는 추세이며 성남시장으로서의 높은 공약이행률, 성남의 복지발전에 힘썼던 점들이 향후 대한민국의 사회적인 문제점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의 등장으로 인해 2017년 대선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손학규, 관록있는 정치계의 노장으로 주목받아
1988년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2~1993년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고 1992년 제14대 민주자유당 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손학규 전 대표는 이후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 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2년 제31대 경기도 도지사를 거쳐 2008년 대통합민주당 공동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2010년 민주당 대표, 2011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거쳐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선거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역임한 경력 등으로 인해 국내 정치사를 관통하는 관록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손학규 전 대표는 재보궐선거 낙선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칩거 중이었으나 지난 9월 공식적인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손 전 대표는 지난달 13일 ‘동아시아 미래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 및 후원의 밤에서 “7공화국 건설에 나설 개혁의 전사들을 모으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처럼 손 전 대표는 한국 정치의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하고 있으며, 스스로는 대선 출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비록 현재는 대권 출마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손 전 대표의 오랜 정치 경력과 함께, 현 대통령의 탄핵 발의와 특검 수사 등 특수한 형국으로 정치계의 분열이 예상되는 현재, 정치계의 어르신인 손 전 대표가 새로운 행보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Who will be the next president of Korea?
Moon Jae-in, Ban Ki-moon, Park Won-soon,
Ahn Cheol-soo, Lee Jae-myung, Sohn Hak-kyu, etc?

Park’s duty as the president was suspended on 9 December as the result of the impeachment being passed the National Assembly by 234 in favor, 56 against, 7 invalids and 2 abstentions. While the impeachment bill is being examined at the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CCK), Prime Minister Hwang Kyo-ahn is acting for the president. Park Han-chul, the president of the CCK said in his New Year’s speech “We will examine the impeachment bill without fear or favor but based on the transparent legal procedure in speed that will make sense to the people.” Leaving the embarrassing situation aside a while, who will be the next president of Korea is taking the center stage of the buzz. The 19th presidential election is 20 December 2017 but majority of people predict it will take place within the first quarter of the year. Yet the soon-to-be-president is still in obscurity. It might give a hint though if we take a look at the recent poll carried out by Realmeter in early December: Moon Jae-in (23.5%), Ban Ki-moon (18.2%), Lee Jae-myung (16.6%), Ahn Cheol-soo (7.5%), Park Won-soon (4.3%) and Sohn Hak-kyu (4.2%). The latest poll by KBS and Korea Research, however, shows a variance in percentage with new faces: Moon Jae-in (21.6%), Ban Ki-moon (17.2%), Lee Jae-myung (11.4%), Ahn Cheol-soo and Ahn Hee-jung (4.6%), Hwang Kyo-ahn (3.4%) and Park Won-soon (3.1%). 

Civil-rights lawyer turned politician Moon Jae-in
Likely-to-be the next president of Korea Moon Jae-in is a civil-rights and labor lawyer turned politician. He stepped into the political circle by taking the post of the senior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civil affairs of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in 2003 and the position continued to 2005 with an additional role as the senior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civil society before serving his last post as the last chief presidential secretary of the same administration. When Roh ended his life, he served as the chief director of Roh Moo Hyun Foundation. His second phase of political career started when he won the 19th general election in 2012 with 55% of the vote in his constituency of Sasang District, Busan. In the 18th presidential election the same year, he was defeated by the current frustrated president Park by 3.6%. He nevertheless pushed his political ambition in the New Politics Alliance for Democracy before serving as the first leader of the current The Minjoo Party which he retired from the position to prepare for the next presidential election. Yet the party members regard him as the most influential person of the party. In a relay interview, he showed his aspiration to build new Korea where ‘equality’ in opportunity, ‘fairness’ in procedure and ‘justice’ in result are commonly practiced. 

The merit of being the first Korean UN secretary general Ban Ki-moon
Born in Eumseong County in North Chungcheong Province in 1944, Ban Ki-moon is best known as the first Korean UN secretary general. He joined in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in 1970 and served as the director of international liaison division of the ministry in 1980, the councilor and consul general of Korean Embassy in the US in 1987, the special assistant of t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in 1992, the senior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foreign affairs and national security in 1996, the Vic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in 2000 and 2001, the headquarters ambassador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in 2002, t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between 2004 and 2006 and the UN secretary general between 2007 and 2016. During his 10 year service in the UN, Ban dealt with average 9.5 schedules a day, visited 154 countries out of the 193 member countries of the UN and met the heads of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s more than 7,000 times from which he received credits for his diligence. As the weak point, he has no experience in domestic politics but being neutral is playing advantageous for him to secure his status as the runner-up presidential candidate at the moment. 

Clearing away the outdated politics by the innovator Park Won-soon
The General Election Federation (People’s Coalition for Corrupt Politics Clean Up) launched an anti-campaign against corrupt politicians in the 16th general election in 2000. 102 of 132 candidates (72.3%) had to drink a bitter cup as a result. And the person who commanded the anti-campaign was Park Won-soon. He said that the anti-campaign was carried out based on their search on the candidate’s history of military service and property and corruption charges, violation of election law, breach of constitutional order, anti-human rights activities, diligence on the duty, attitude on bills and polices and anti-parliamentary and anti-voters activities. In 2001, he established The Beautiful Foundation to promote donation culture. In autumn 2011, he challenged the Seoul mayoral election as an independent candidate and received 52.15% to beat the rival by 7.19%. He claimed the city land used for guarding former president Chun Doo-hwan as an immediate action after inauguration and kept his promise to reduce university tuition fee by half at University of Seoul. He poured city’s budget of KRW 83.8 billion, reducing the yearly tuition fee to KRW 2.38 million and 75,000 for the students. In 2014, he was reelected (56.1%) and recently announced his will to challenge the presidential primary of The Minjoo Party. To his weak point of not having once been a lawmaker before, he said “The people are tired and feel despaired of the outdated politics. All those years, I have walked a single path as a civil activist and the innovator mayor of Seoul. If the people are eager for an innovator and innovation in deep down their heart, I am the one who is likely to be elected.” 

An entrepreneur turned politician Ahn Cheol-soo
Ahn established Ahnlab in 1995 and has performed remarkable feats in the computer security sector in Korea. He served as a board member of The Beautiful Foundation between 2008 and 2012 and the dean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Convergence Science and Technology between 2011 and 2012. He began his political career in 2013 as a 19th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He served as the co-leader and a senior advisor of the New Politics Alliance for Democracy in 2014 and the co-leader of The People’s Party in 2016. Currently, he is a 20th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He created a sensation in the presidential election in 2012, stirring the political world with ‘An Cheol Soo Syndrome’, and he was praised for his talent in pushing things forward and consistency in speech and action, through which he has secured a strong support from those who are fed up with the established political powers divided into Yeongnam and Honam. In the general election in April 2016, The People’s Party surprised both the political world and the people by winning a considerable number of votes and put the new party on the third in rank after The Minjoo and The Saenuri. 

SNS-based communicator and hard-hitting orator Lee Jae-myung
‘Straightforwardness’ might best serve Lee Jae-myung. His outspoken comments have been well received by the public ever since he was a civil activist and his talent in using SNS, an effective communication channel with the people, has earned him fame and recognition. He joined The Uri Party in 2005 but had to drink a bitter cup in the local election in 2006 and the general election in 2008. He served as the deputy spokesperson thereafter and won the Seongnam mayoral election with 51% of the vote in 2010 from which he has been serving the position until now. He wiped off the city’s debt of KRW 570 billion and wowed the citizens with ‘3 Free Welfare Policies’: Young People Support Fund, School Uniform and Postnatal Care. He was the one who first took action against the president Park in Gwanghwamun Plaza when the Park and Choi Gate broke out last November. He led the candle vigil and stood upon impeaching for the president. His speeches immediately created a ripple on SNS and were spread like wildfire especially among young people. And his straightforwardness and action have made him as a promising presidential candidate backed up by an upward trajectory in approval rating. That is why rivals are keeping a tight rein. 

A man of dignity and a veteran politician Sohn Hak-kyu
Sohn served as a political science and diplomacy professor at Inha University in 1988 and the director of Sogang University Institute of Social Sciences between 1922 and 1993 before stepping into the political world as a 14th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The Democratic Liberal Party) in 1992. In 1996, he served as the Minister of Health and Welfare, a 16th member (The Grand National Party) of the National Assembly in 2000, the 31st governor of Gyeonggi Province in 2002, the co-leader of The United New Democratic Party in 2008, the leader of The Democratic Party in 2010, a senior advisor of The United Democratic Party in 2011 and the co-chairman of Central Election Commission of The New Politics Alliance for Democracy in 2014. He retired from the political world when defeated at a by-election but came back again last September. At a supporting night of the 10th anniversary of East Asia Future Foundation on 13 last month, he said “I will gather innovative warriors who will build the 7th Republic of Korea”. He has not officially made a statement to run for the coming presidential election but political reformation is his top priority. 


백종원 기자  bridg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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