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그리고 비움과 배열이 만든 공간의 울림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존재인 몸에 현실 속 삶을 담아냈다”
조각가 정기웅 작가

인간의 몸은 항상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도구로서 예술가에게 마치 창조주가 된 듯 한 고민과 기쁨을 동시에 준다. 나르시스가 강물이 아니라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던 것처럼, 수천 년 간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속한 인간의 몸에서 매력을 느끼고 아름다움과 자아를 표현해 왔다. 그러한 관점에서 생명과 에너지를 담고 있는 ‘몸’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정기웅 작가의 압축과 분할, 담음과 비움의 미학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입체적 개체 분할에 씨앗의 생명성을 담아 나누고 비우다
인간의 몸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시도는 수천 년의 도돌이표이자 클리셰지만 지루하지 않다. 살아 움직이기에 아름답고 똑같은 양감을 갖고 있지만, 죽어 굳어진 고깃덩이에서 느껴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 조각가 정기웅 작가는 그 무언가를 ‘생명’이라고 말한다. “몸은 살아있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 모습과 형상을 찾아서 작품으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이런 속성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단순한 형태로 나타냈는데, 이 형태는 압축과 생략을 반복하면서 완만하고 둥글어졌다” 몸을 한 덩어리로 압축하니 생명성을 간직한 씨앗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에 각각 남성성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M, F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둘의 합일체(Human Being)인 H가 태어났다. 생명은 언젠가 본래의 형태를 잃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기에, 정 작가는 인간형태를 단순화, 압축한 후 쪼개 보고 쌓아 보았다.

새로 만든 영역에는 다른 음영이 생겼고 다른 각도에서 볼 단서가 생겼다. 그리고 그 사이 공간을 비워 내니 공(空)의 영역이 만들어내는 울림이 생겼다. 그렇게 개체는 압축과 단순화, 응축을 거쳐 무(無)의 공간에서 나눔과 비움이 시작되며 살아있는 울림은 더욱 분명해진 ‘생명(L;Life)’이라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마음속의 단서를 표현하고 의미를 만들어낸 작법을 가진 작가들과 달리, 정 작가는 연금술사처럼 몸을 재배열하는 시도를 통해 한 단계씩 나아갔다. 정 작가에 따르면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생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L을 형상화하고, L의 또 다른 이름인 ‘삶’이라는 관점에서 표현한 L이 지닌 신령함을 현실의 ‘삶’으로 전이시키는 몸의 변이 과정이다.

디지털 모델링으로 만든 인간의 형상이 주는 울림
정 작가의 작품에는 살아있는 상태와 변이되어 재구성된 형태가 공존한다. 죽음을 압축하고 잘라낸 단면을 쌓아올리는 다미엔 허스트의 작품에서 정교한 비생명성을 느낄 수 있다면, 현실을 반영하고 이름을 붙이는 철학적 접근 끝에 완성된 정 작가의 L 시리즈들은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기에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성을 구분한 역할이었던 M,F,H의 단계를 지나 요즘은 작품에 생명의 첫 글자 L을 사용하고 있다. 돌과 금속으로도 시도해 보았는데, 생명과 삶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배열하기 위해 소재를 바꾸었다. 3년 전부터는 사람에 대한 실제 사진을 담아서 구체적인 인간화/피조물을 만드는 창조주의 기분을 느껴보았다. 그 후에 L아담, L이브를 완성하게 됐다.”

이 흥미로운 작업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을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생명성을 가진 창조물과 그의 짝을 만든 것과 비슷하지만 이들은 더 자아가 분명한 창조물로 만들어졌다. 컴퓨터 디지털 모델링 프로그램에서 태어난 이들은 처음에는 생명에 대한 이미지보다 얼굴의 퍼스널리티에 주목하게 되는 것을 막고, 원 주제인 ‘몸’에 포커스를 준 존재들이다. 그러다 <2015 조각페스타> 출품작에서는 삶에 대한 주제를 다루게 되면서 대상성을 부여받고 얼굴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이 공간에서 중첩되어 인간의 입체 토르소로 단순화됨과 동시에 마치 입체 등고선처럼 보인다. 생각해둔 느낌에 부합하게 그 사진을 투명도가 조금씩 다른 아크릴, 유리, 폴리카보네이트(PC)소재에 붙여 만든다. 직접 모델을 데려다가 표현하는 것과는 미세한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 모델 사진이 아니라, 데이터를 모아 모델링한 사진으로서 내 마음대로 해부학적 조합, 포지셔닝이 가능하다” 점층적으로 쌓이면서 그 사이에 투명한 공간을 주었기에 여러 각도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이 있고, 그 울림이 작품에서 삶의 가치와 상징성을 더 부각해주는 것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일 것이다.

L(생명) 시리즈는 압축, 나눔, 비움에서 도출된 현실의 삶
사진은 평면에 출력된 예술이지만, 2차 창작을 거친 정 작가의 분할된 사진들은 입체적으로 재구성되고 분할된 공간을 앞, 뒤, 좌우 사방에서 볼 수 있다는 관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체에서 압축과 단순화로 사각, 원, 혹은 물방울같은 타원형상을 만들고, 압축이 무의미해지자 점층적으로 쌓는 표현, 그리고 개체의 분할을 거쳐 투명한 공간의 여백을 만든 현재의 표현기법에 도달하기까지는 깊은 성찰이 있었다. “평상시에 아이디어를 많이 기록해 두었다가 작품 안에서 풀어내기 위해 공부한 방법론을 현실화한다. 이미지보다 ‘형태’로 표현했을 때 사람의 ‘몸’을 생명의 ‘씨앗’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작가는 쉽게 맨몸을 드러낼 수 없는 대신 피조물들의 누드 안에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압축에서 끝내지 않고 나누고 비우는 느낌을 더한 것이다. 그것이 내 작품의 색깔이다.” 단어와 상징성으로 인간화하다가 공간의 착시와 비움의 미학을 차용하면서 몸이라는 주제, 생명과 삶이라는 표현에 정착한 정 작가는 내년에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예술에서는 창조자의 세계관이 피조물의 속성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것이 폴리카보네이트 패널과 디지털 프린트사진이 결합한 요람에서 앞으로도 태어날 L아담과 L이브가 보여줄 삶과 몸의 접근 방식에 여전히 기대가 큰 이유이다. 

Resonance of space made of body, emptiness and array
Realizing reality in the body
Sculptor Giwoong Chung

Putting vitality of seeds into work and empting 
Making things into a human body shape has been a long tradition in art history. Sculptor Giwoong Chung tells about life “Our body is a living organism which can bear a new life. I express the shape of the body I found and they became gentle and round over repeating the process of compressing and omitting.” Chung compresses the shape into one lump and it resembles a seed. He then named each work as M (male) and F (female) and H (human being). Life at the end of the day loses its form. For this reason, Chung tries simplifying, compressing, splitting and piling to create various shades, angles and space. Thus born was Chung’s work full of life. Unlike other artists who express a clue of their heart and give a meaning to their works, Chung arranges the body like an alchemist. Creating a work for Chung means to embody a life and transmit the divine element of life to reality. 

Resonance of human-shaped sculpture coming through digital remodeling 
There is a rearranged form in Chung’s works. If you sense elaborate death in works of Damien Hirst, you can sense vitality and reality in works of Chung. Sculptor Chung said “Recently, I use ‘L’ a lot more than ‘M’, ‘F’ and ‘H’ in my works. I used stones and metals to arrange a dubious meaning of vitality and life. I started to feel a sense of creator who made the shape of human body by trying to imitate the process from three years ago.

As a result, I completed L Adam and L Eve.” Like Dr. Frankenstein makes his avatar, Chung did the same but gave more personality through digital modeling. Chung paid more focus on the body shape rather than the personality that the face can express. Recently, Chung’s works have been displayed at 2015 Sculpturefesta and he said “Photographs are overlapped in a space to be a simplified torso and it looks like a three-dimensional contour. I attached the photographs onto acrylic, glass and polycarbonate to create a work. There might be a slight difference in using a real model so I gathered, instead, the data, remodeled it, mixed it and positioned it at my will.” You might feel awesomeness by seeing the transparent space in different angles as well as symbolism of life in the work.

L series expresses reality through compression, division and emptying
2 dimensional photographs are divided and rearranged 3 dimensionally by Chung and you can see the creation in all positions. There have been many processes from making the shapes of square, round and oval to division and rearrange of each shape. Chung said “I jot down my ideas time to time for my work. I defined human body as a seed. I, as a sculptor, can express my desired images into my creation. I can say in a word that my style is the whole of compressing and emptying.” Meanwhile, Chung is preparing for his solo exhibition sometime next year. In art, creator’s view of the world decides the properties of creations. And Chung does this process by using polycarbonate panel and digitally printed photographs. Power Korea looks forward to seeing more of Chung’s L Adam and L Eve in near f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