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生滅)의 순환을 여는 원(圓)에 관한 단상
최해숙 작가
오랜 교육자 생활을 마감하기 전까지 작가 최해숙이 추구했던 회화의 세계는 자연에 대한 성찰과 그것에 관한 근원적 사유였다. 그것이 자연으로부터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혹은 우주로부터 나와 우주로 돌아가는 인간 근원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지기 전까지 작품의 화면은 주로 자연을 해체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식의 초기입체파와 같은 분석적 회화양식으로 발현되어 왔다.(중략) 함축적인 자연본질을 표상하기 위해서 아마도 작가는 사생적 일루젼을 포기하고 이미지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후기인상주의나 초기 분석적 입체주의 더러는 초현실주의 표현기법 등이 필요했으리라. 또한 현대인들이 회귀하고픈 자연본성을 유효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화면에 잡다하게 병치된 자연과 문명의 상징적 도상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전통 모색이 도달한 동양적 사유
분석과 극복의 대상으로만 간주되었던 근대 서구의 자연관과 달리 인간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는 동양 전통의 자연관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작가는 살아온 세월의 깊이에 버금가게 진중한 연구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작가가 살아온 배경인 한국적 전통의 자연관으로 구체화되었는데, 솟대, 탈, 방패연, 풍경, 노리개, 색동 등의 소재와 더불어 한국 전통의 문양과 도상이 자연의 이미지와 병치되어 화면 안에 나타나는 식의 조형 탐색이 이루어진 것이다.(중략)
이러한 주제의식의 직접적 전달성과 비교적 구태(舊態)의 조형방식이 2000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부터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양상으로 느슨하게 풀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이즈음에 그녀의 자연은 지극히 단순화되거나 많은 부분 개념화된 자연으로 변모한다. 이런 양상은 군더더기를 버리고 자연의 본질만을 화면에 담아내고자 하는 그녀의 오랜 탐구 결과일 것이다. 주제의식을 다시금 넓히면서 기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인도여행이 그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작가 최해숙에게 있어 동양적 사유란 한국적 전통 모색이 보다 더 확장되어 도달한 지점이지만 훗날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더욱 깊이 있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적 토양에 그린 십이지(十二支)의 순환적 시간관
작가는 예순을 이미 넘기고 칠순으로 지나가는 세월의 허리께에서 새천년을 감동스럽게 맞았을 것이다. 그녀는 2001년 3회 개인전 카탈로그에 당시를 회고하는 심정으로 ‘육갑(六甲)을 털었다’는 표현을 썼다.(중략) 노인의 세월로 접어드는 육십갑자를 넘어서는 이들이 보여주는 겸손의 미덕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리라. 한 인생이 견지하는 시간의 흐름이란 우주의 영원세계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작가 최해숙은 이러한 세계 앞의 초라한 육신인 인간의 존재를 끝내 인정하고 우주 앞에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로 결단한다. 3회 개인전의 테마인 십이지(十二支)는 그런 면에서 10간 보다는 미미한 세월의 층, 즉 일상으로부터 지속되는 현재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닥종이에 아크릴 패턴화시킨 그녀의 시리즈 작업인<십이지>에서 우리는 저마다 나날의 운세와 일 년 운세를 확인하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우주의 생성원리 속의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계기를 맞이한다. 그녀의 회화 세계로부터 특수성의 것으로 분리되는 이 시리즈 작업은 지나친 도식화와 함께 이전 작업에서 나타나던 메시지의 작위성이 재등장하고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테마에 관한 한 좀 더 심층적인 의식의 깊이로 내려와 앉은 느낌이다. (중략)
원(圓)의 형상으로 모색하는 ‘더불어, 하나’의 세계관
2004년 개인전에서는 <열림소리>를 그 주제로 삼고, ‘원’의 형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가의 매우 추상적인 의지가 발현된 작명으로 이 땅에 한 삶의 주체로 태어나 성장했고, 이제 쌓인 연륜을 인생의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한 원로화가의 인생노정과 닮아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인생관을 조망하는 작가의 세계관은 이제 ‘천부경’에 와 있다. 그녀의 작품 <열림소리>시리즈에서도 나타나듯이 대우주 생성의 원리는 원형의 이미지 안에서 ‘천지인’의 삼극이 태어나 자라고 늙으며 병들고 죽는 것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화면의 형식적인 구성으로는 윷판의 본래 형태인 원형이나 현대에 들어 변모된 형태인 사각형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삼극의 개별 요소들이 각자의 위치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중략) 윷판을 구성하는 29개의 점이 달의 공전주기를 나타내면서 우주의 생성원리를 상징화시켜 보여주듯이 그녀의 화폭에는 윷판 구조의 철학이 천부경 사상을 드러내는 한자들의 조합과 함께 어우러져 우주의 생성소멸의 이치를 상징화시켜내고 있다. 더러는 태극문양으로 회오리치는 원형의 구조도 역시 천부경의 ‘더불어, 하나됨’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작가 최해숙은 종교적 예술심상의 연구와 함께 그간 연구해 왔던 천부경의 접합점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천부경의 진리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의 시작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가 말하는 양극단의 통합은 천부경의 통합의 진리와 일치하므로, 이 둘의 교집합을 찾아 통합을 작품화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 부조리 및 양극단의 모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점을 찾고, 이원론적 오류를 범하는 사회의 세태를 꼬집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주 암호작업 역시 그가 요즘 작품의 변화를 위해 연구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다.
이렇듯 그녀는 자연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전통사상을 탐구해 온 그녀의 일관된 작품세계가 동양 정신, 나아가 한국사상에 근간한 표상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구체화되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글_미술평론가 김성호
취재 및 정리_정재헌 기자
Fragmentary thoughts on circles that opens the cycle of life and death.
Artist Hae-sook Choi
Choi had been focusing on introspection about the nature and its original reasons in her paintings until she finished her long lasting teaching career. Before she led herself to deep reflection on human origins which goes back to the universe from the universe, or to the nature from the nature, her works were about breaking up the nature and reconstructing it again like early cubism which was an analytical painting style. In order to represent implicative natural essence, Choi probably gave up illusions about life and death but needed post impressionism through de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of images, or early cubism and surrealism instead. She might also needed symbolic iconography of the nature and civilization which were juxtaposed miscellaneously on a canvas in order to effectively express the original nature which people want to return to.
Seeking traditions led her to oriental thoughts.
The modern western view of the nature is the subject for analysis and conquest. However, Choi had been studying hard in order to paint the oriental view of the nature which is understood rather as living foundation. And her works were realized in the traditional Korean's view of the nature which is her cultural background. The traditional Korean designs and iconography such as poles(signifying prayer for good harvest), masks, kites, wind-bells, toys and stripes of many colors(clothes), were juxtaposed with the nature's images and they were expressed on canvas. It is interesting to see this relatively old structural style and the subject's direct deliverance from her second solo exhibition in 2000 to be loosely turning into conceptual and symbolic aspect later on. Around this time, Choi's nature changed into simplified or conceptualized nature. This must be the result of her long lasting study to express the essence of the nature by throwing away unnecessity. It originated from subject consciousness. Specifically, her travel in India might have given a spark. However, we should keep in mind that oriental thoughts for Choi is the point she reached when seeking the Korean traditions with which became the foundation for deeper reason about Korean identity.
Circulatory times of the twelve horary signs painted on Korean soil.
Choi might have welcomed the new millennium emotionally in her mid 60s. Choi, in reminiscence, wrote in her third solo exhibition catalogue in 2001 that she shook off the sexagenary cycle. The thing that the old people, who are coming over sixty, showing their virtue of humility is a beautiful thing. A person seeing a flow of life is trifling in the eternal world of the universe. Choi decided to admit this trifling body of human being to expose herself unreservedly in front of the universe. In that respect, the theme of her third solo exhibition 'The Twelve Horary Signs' indicates more insignificant layer of the times than '10 Gan(four cardinal points)', which shows us the present life that is being continued from daily life. Choi patterned acryl on paper through her series work 'The Twelve Horary Signs'. From these works we can get rid of the traditions of predicting a day's fortune or a year's fortune to see meanings of life in principles of creation of the universe. This series work is separating the particularity from the world of paintings, and becomes a target of criticism due to its too much diagramming of intentional messages which was shown in her previous works. However, in terms of her theme, it came down to deeper consciousness.
Seeking 'togetherness and one world' with circles.
Choi took the theme 'Open Sound' in her 2004 exhibition, and started to study about the forms of circles. The exhibition was similar to her life circle and the theme was the expression of her conceptual volition, meaning that she was born as a main body in this soil and grow up, pass her experience to her juniors, and go back to the nature again. Choi's view of the world, which covers the whole views of life, reached 'Chunbukyeong(God's words)'. Like it showed in 'Open Sound', the principles of creation of the universe is that the tripolar of heaven, earth and people are continually born and grow up and get old and sick and die eternally in the circular forms of images. In terms of the formal configuration of canvas, the circular form which is the original form of 'Yut Pan(the board of stick game)' or the rectangular form which is the transfigured form of Yut Pan in modern time, are dominant with tripolar being positioned in each location. Like 29 dots of Yut Pan indicate the Moon's cycle of revolution and symbolizes the principles of creation of the universe, the philosophy of Yot Pan is combined with the Chinese characters which revealed the philosophy of 'Chunbukyeong' and it symbolizes the principle of life and death of the universe. Also the circular form of swirling Taegeuk mark reveals the Cungbukyeong's 'togetherness and one world'. Recently, Choi is concentrating on finding the junction of Chunbukyeong which she has been studying with religious mental state of art. It means that the beginning of combining the truth of Chunbukyeong with the truth of Christianity, and the Jesus's saying of combining the two extremes are coincided with Chunbukyeong's truth of combination. Therefore, the combination is to be created as art works by finding the intersection of the two. Through these processes, she tries to find the point to solve social irregularities and the contradiction of the two extremes. It also points out the people's dualistic fallacy.
The universe coding is one of the subjects she is working on recently to give a change to her works. I expect that Choi's consistent world of art works, that started from the nature and pursue our traditional ideas, will be expressed with more deepen and materialized forms in oriental spirit and symbols based on Korean ideas.
진경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