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을 믿는 창원영락교회 김수봉 목사

파워코리아l승인2012.03.09l수정2012.03.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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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세상을 위해 전국에 무료 상담센터를 세우고 싶다

긍정의 힘을 믿는 창원영락교회 김수봉 목사




창원영락교회의 김수봉 목사는 어느 순간부터 부흥강사로 널리 알려졌다. 그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앙의 참 은혜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설교로 긍정적인 희망을 찾게 했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현대인들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김수봉 목사의 설교는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거울이 되었다. 또한 김수봉 목사의 목회 활동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은 큰 교회를 마다하고 개척교회만을 고집했고 모두 부흥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현재 김수봉 목사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가정문제의 전문 상담사로, 부흥강사로, 방송인으로 활동을 하느라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언제나 21세기 교회가 가야 될 길, 목회자가 해야 될 일을 찾아서 시간만 나면 공부하는 김수봉 목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리뷰 해 보았다.     


나는 가난과 함께 자랐다

김수봉 목사의 어릴 적 꿈은 목회자가 아니었다. 조부모, 3명의 삼촌, 부모님 등 3대가 모여 사는 가난한 대가족의 장손이었던 그는 농사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농사도 돕고, 쇠죽도 끓이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밥도 하고 그랬습니다. 추운 겨울에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내려오다 넘어져 울기도 하고…. 공부할 시간도 없었지요. 그때 저에게 세상에 가장 힘든 일이 농사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농촌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경우에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과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등산도 가지 않았고 심지어 보리밥도 먹지 않습니다.”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기에 기업체 회장이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이 어린 김수봉 목사의 꿈이었다. 농사일을 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다는 마음도 그때 먹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에 전념했다. 부산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호남신학대학교, 미국 휴스턴 신학대학원, 총신대학교, 연세대학교, 코헨대학교 등 무려 7개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석사와 박사학위까지 밟았다. 진로를 바꿔 목회자가 되고자 했지만 작은 갈등도 있었다. 어릴 적 꿈을 완전히 놓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목회자의 길

김수봉 목사는 어릴 때부터 인사 잘하고 어른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통금시간은 9시였으며, 검소함과 절제가 가풍이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집안 어른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깊은 신앙심이 생겼다. 그는 교회, 학교, 집이 어릴 적 유일한 활동공간이었다. 

“신학대에 다닐 때에도 목회보다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전도사가 임지를 옮겨가면서 고별설교를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설교가 끝난 뒤 은혜를 받았다는 교인들에게 붙들려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고, 첫 담임전도사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곳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웃동네로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바닷가 어촌, 거제도 대금교회였다. 하지만 김 목사가 부임한 뒤 성전 건축 부지를 구입할 정도로 자립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60여 년의 교회 역사에서 그 당시가 가장 부흥의 절정기로 기록되었다.  

김수봉 목사의 목회 경력은 올해 24년이다. 큰 교회의 초빙도 있었지만 거절하고 일부러 개척교회를 세 번이나 맡았다. 성전건축도 마찬가진데 지금의 창원영락교회가 그 세 번째다. 집에 쌀이 떨어진 것도 모를 정도로 어렵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개척한 교회마다 3년 되던 해에 성전을 건축하고 부흥에 성공했다. 김 목사의 성실함과 목회자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 일에 대단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누구나 쉽게 알아듣는 은혜로운 설교

일찍부터 부흥사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 최대의 기도원인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을 포함해 국내외 유명교회와 기도원들의 초청으로 1,200회 이상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 공로로 지난 2008년에는 한국부흥사 협의회(고문 조용기 목사, 총재 피종진 목사)로부터 부흥대상을 수상했다. 

그의 설교는 틈만 나면 공부하고 책을 보며 얻은 지식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쉽게 이야기함으로써 긍정적인 감동을 안겨주어 교인들의 마음의 이끌림을 자연스럽게 얻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교회부설로 거장상담센터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데 전화와 온라인 상담 등을 통해 경남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상담센터가 되었다. 김수봉 목사는 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은 복지상담사이며, 한국중재원의 이혼중재위원인 그는 가정폭력, 성폭력, 청소년, 이혼중재, 심리상담 등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법률적인 문제는 자문변호사 5명이 지원하고 있다. 시간, 비용 등 만만치 않는 일이지만 김 목사가 목회활동 만큼이나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이다. 

김수봉 목사가 펼친 일중에 <사랑의 헌옷 나누기> 활동도 매우 유명하다. 봉사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 영역이 커지면서 아예 회사가 되었다. 엔아이인터내셔널이라는 법인회사를 통해 재활용 의류를 동남아에 수출했고 연간 50억 내외의 매출실적을 올었다. 그 시절 국내 동종업계 103개 회사 가운데 7번째 규모로 성장시켜 제법 사업가적 기질을 보여주었고, 아이디어가 좋은 기업체 대표가 되어 어릴 적 꿈을 이룬 작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2002년 만취운전자가 낸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김 목사의 미래는 절망적인 몸 상태와 긴 병원생활로 급변했고 결국 사업을 정리하고 목회자의 길을 다시 찾게 된 이유가 되었다. 


작금의 교회가 해야 할 일, 목회자가 해야 될 일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이라는 질문에 대한민국 대형교회의 양적 팽창주의를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선망의 대상이지만 교회의 대형화는 교리적인 혼란을 야기하고, 신도를 모으기 위해 잡음도 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앙이 신자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감상적인 주일 행사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영성의 깊이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주체이자 얼굴인 신자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놓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지요. 여기에 한국교회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답고, 신자는 신자다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입니다.”  

김 목사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생각도 달라지고, 말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교회가 나서서 이웃 간에 서로 사랑하는 풍토를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그래서 2004년 <거장상담센터>가 세워졌다.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과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김수봉 목사는 언제부터인가 목회자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가질 때가 있었다고 한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목회자나 신자들이 교인답지 못하여 우리 사회로부터 많은 매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 틀에 죽어 가시면서도 한 번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싸우신 적이 없고 자신이 먼저 법정에서 원고가 된 사실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른 다는 지금의 한국 교회와 교단과 신자들의 경우는 온갖 고소고발 등으로 참으로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얼굴을 똑바로 들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미약하나마 상담센터 상담을 통하여 이러한 고소고발을 막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 김수봉 목사의 꿈은 행복한 가정,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 무료상담센터를 세우는 일이다. 각 교단 신학교마다 법신학과를 개설해서 전문가 양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장기적인 계획이다. 이 메마른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또 목회자가 해야 될 일을 찾아서 하나씩 실천하고 있는 김수봉 목사의 꿈이 하루빨리 이루어져 누구나 행복한 세상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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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Counseling Centers to create a Joyful World

Changwon Youngnak Church Pastor, 

Kim Su Bong believes in the power of Optimism and Positivity

 

Changwon Youngnak Church’s very own pastor, Kim Su Bong, is widely known to be a revivalist. His sermons are told through his own experiences and is made so anybody can understand his points easily in a positive light, giving listeners hope. Kim has helped heal the minds and bodies of wounded people in today’s world, and his sermons have become very important in the life of many. As a pastor, Kim refused to work in big churches and rather chose underground churches in which he was able to successfully help all his clients. Kim is currently living a busy life, as he acts as the head pastor at a church, a revivalist, counselor, and also as a broadcaster. We interviewed Kim, talking about his life in the past and the present, and also his visions on the future.

 

Grew up in Poverty

When young, Kim’s dream was not to be a pastor. As a child, Kim lived together with his grandparents, uncles, and parents. Their family was poor, and as the eldest son, he had to work hard by farming. 

 

Kim reflected, “When I was young, I helped my family out in farming, made food for cattle, and made meals when my parents were absent. I remember carrying chopped wood down from the mountains, and crying after taking a fall. I also did not have much time to study. The hardest job I had to do back then was farming. Thinking about my past experiences, I never say that anything is hard. My past was so hard, I don’t even want to take hikes up mountains, nor do I eat boiled barley rice.”

After experiencing labor and a difficult early life, another one of Kim’s dreams were to become the CEO of a company and to make lots of money. He gained the motivation to get a good education and to work hard. After graduating in the Department of Law at the Busan Dong-A University, Kim got Master’s and Doctorate’s from seven prestigious universities, which included the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 Honam University, Chong Sin University, Yonsei University, and Cohen University. He eventually changed his motives to become a pastor, however, his past dreams weren’t so easy to give up. 

 

The Inevitable Road to Pastor

Kim was a child with good manners. His curfew was at 9PM, and it was a family tradition to have self control. Being such a sincere family, Kim and his family members developed a religious faith. Since childhood, he was very active at church, school, and at home. 

Kim stated, “When attending Theology school, studying was more important than activities as a pastor. However, one day, my missionary friend left his post and asked me to preach, which is when I started my road to being a pastor. After that night my missionary friend asked me to preach, I started my duties as a missionary.”

The church was located in the neighborhood that the past president, Kim Young Nam, resided in. It was a village that was economically struggling, which also meant a struggling church. However, after Kim took his post, the church went through a quick growth, as it was able to eventually buy its own building site. That was the height of the church’s 60 years old history. This year is Kim’s 24th year working as a pastor. Kim declined invitations from big churches, and lead small churches three times. His current church, Changwon Youngnak Church, is one of them. Although they all had difficult beginnings, all the churches that he lead were successfully revived. Such feats prove Kim’s sincerity and seriousness as a pastor. Kim believes that such works have great worth to him.

 

Kind preaching that can be easily understood

At a young age, Kim worked as a revivalist. He has lead more than 1200 revivals till now in both domestic and international areas. His achievements were noted, and Kim received an award for his revivals by the Korean Revival Council.

Kim is famous for naturally pulling in believers through his touching and admirable sermons. His sermons are able to do so due to Kim’s endless effort in studying the faith and his very own experiences. As part of the church, Kim also operates a family counseling center for free. Having a doctorate in counseling, Kim helps solve issues such as family violence, rape, teenager problems, divorce, and mental issues. He also has 5 lawyers for issues that require involvement in law. Kim views such activities to be as important as his job as a pastor. 

Kim is also famous for his involvement in the <Share Old Clothes for Love> campaign. The campaign started out as a small volunteer activity, but has now grown into a company. With NI International, the company exported recycled clothing to Southeast Asian countries, and at one time, raised up to around $5,000,000. Kim showed his ability to successfully manage companies through creative ideas, and reached one of his childhood dreams. However, after a devastating car crash in 2002, Kim eventually ended his business and returned to his life as a pastor. 

 

Job of today’s churches, Job of today’s pastors

Kim’s response to the question “What direction should Korean churches take?” was that they have to be cautious of expansionism. He stated that although it could be envious, big churches would have a negative effect on the religious faith and would affect the devoted believers. 

He stated, “If we aren’t influencing the lives of the believers of the faith, we are not doing a good job. The thing that is needed is spiritual depth. There is no other road then to make one a true Christian. Korean churches need to risk everything. A church needs to be like a church, and a believer must be like a believer.”

Kim believes that love will change how we think, talk, and behave. That is why his family counseling center was created in 2004. It was created for both the people who attended the church and anyone else that desired for help in the relationship with their family. Kim revealed that he was once embarrassed to be a pastor. This was because churches were not able to fulfill its proper job and pastors and followers were not acting as proper believers of the faith. 

“If you look at the bible, Jesus did not fight with a lawyer when he was hanged on the cross. However, followers of the faith in Korea are showing disgusting behaviors by accusing others and suing. I was so embarrassed, I could not put my face up. By starting counseling centers, I wish to stop the accusations that people are making towards others through the law.”

Kim’s dream is to make happy families and a happy world, which is why he wishes to make free counseling centers around the nation. He also wishes to start law majors at religious schools. We have hopes that Kim’s dreams of a happy world would start with the restoration of churches and pastors in th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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