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를 내려오는 전통한복점 ‘신라한복’, 전통과 현대의 미학 담은 ‘작품’ 만들어

“전통한복 명인의 길 가고자 노력할 것” 안정희 기자l승인2018.04.11l수정2018.04.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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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한복 박영애 대표

조선의 22대 왕이었던 정조와 인연이 깊은 도시인 수원은 수원화성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로 세계 관광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관광도시 중 하나다. 수원화성의 관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을 의미하는 팔달문인데, 이 팔달문 주위에는 조선시대부터 성내(城內)시장, 성외(城外)시장, 우(牛)시장 등이 활발하게 열렸다. 6.25 전쟁 이후 과거의 성외시장을 계승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수원 영동시장은 총 260여 개 점포 중 100개 이상이 한복에 특화되어 있는 한복 특화 시장이자 관련 상품인 포목, 커튼 등의 거래가 활발한 곳이다. 이 영동시장에서 4대째 가업으로 전해지는 한복의 명맥을 이어오며  한복의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박영애 대표의 ‘신라한복’은 그 뛰어난 예술성과 작품성으로 인해 꾸준히 고객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4대를 이어 내려오는 손바느질 전통한복점 ‘신라한복’
‘한복 시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수원 영동시장은 해방 이후부터 상설시장으로 전환되어 혼수품을 비롯한 포목을 주로 판매했던 곳이다. 그러나 브랜드 의류 산업체가 패션을 주도하게 되고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시장표 의류들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동시장은 한복 특화 시장을 표방하며 전문화를 꾀했고 경기 남부 최고의 포목 시장으로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전체 점포 중 절반 가까운 매장이 한복집일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갖춘 점포들이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며 웃음이 가득한 ‘신라한복’의 분위기는 매우 특별하다.
박영애 대표는 증조할머니 때부터 할머니, 어머니, 박 대표에게로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손바느질로 직접 한복을 짓고 있다. 그녀는 충북 증평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들이 많은 집이어서 학업을 끝까지 마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슴앓이도 많이 했고, 그 때도 어머니가 한복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복으로 먹고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살다 보니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해서 생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저 역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집에서 일감을 받아서 10년 정도 바느질을 해오다가 가게를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라고 이야기했다.

30년 이상 ‘한복’의 한 길 몰두하며 현재에 이르러
한복의 전통미와 양복의 편리함 모두 잡아

영동시장에서 20여년, 혼자서 바느질 작업을 하던 것까지 포함하면 30년 이상을 한복 제작에 몰두한 만큼 그녀에게 한복은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조용한 성격에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말한 만큼 처음 시장에 나와 가게를 차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부담이 있었다. 그녀는 “가게를 지나치며 한복을 구경하는 분들이 있으면 호객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워낙 숫기가 없어서 오히려 손님과 눈을 마주치면 시선을 피해버리는 일까지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박 대표는 꿋꿋이 자신의 가게를 일궈나갔다. 일을 받아서 할 때부터 밤을 새면서 작업을 하던 것이 익숙해져서인지 그녀의 ‘신라한복’은 지금도 시장 내에서 가장 먼저 셔터를 올리는 가게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입기에 편리하면서도 전통적인 한복의 미학을 가장 잘 계승한 업체로 수많은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한복에 대해 ‘명절에 입는 옷’, ‘결혼식이나 칠순 등 집안 행사에서 입는 옷’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막상 큰돈을 들여 한복을 구매한다 해도 일 년에 몇 번 입지 않고 벽장 안에 놓아두기가 일쑤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어온 데에는 과거의 유산과 단절된 채로 경제발전을 이뤄 급격한 서구화를 맞이한 우리나라의 상황이 한 몫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대에 발맞춰 한복 제작자들이 변화를 꾀하지 못하고 오로지 전통만을 추구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전통’을 고수하는 태도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행보라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20대 초반 학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남매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노량진역 앞에서 우연히 ‘국립부녀직업보도소’에서 영세민들이나 국가유공자 등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을 실시한다는 게시판의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양제, 봉제, 편물 등 여러 가지 과정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양제 과정의 총 80명 정원 중 10명 결원이 발생한 자리에 지원하여 단번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당시 서울에 기반을 잡고 올라온 것이 아니다 보니 처음에는 내 옷이라도 직접 해서 입자는 생각으로 교육을 받았다. 양제 과정을 6개월 코스로 배우고 재단 과정 특강을 또 한 달 배웠다. 그렇게 배웠던 것이 한복집을 하면서 빛을 보고 있으니 인생이란 참 오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회고했다.

언제나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작품’ 만들어
오랜 기간 왕래하는 단골들로부터 꾸준히 호평 받아

박 대표는 가업으로 내려온 한복 바느질에 직접 배웠던 양제를 접목해 젊은이들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한복, 현대적인 맵시가 있는 한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량한복이 나오기 전부터 한복 바지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선이 들어가도록 옆선에 입술주머니를 만들기도 했고, 세련된 색감을 추구하여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더라도 튀지 않으면서 화사한 멋을 자랑하는 한복이 그녀가 자랑하는 ‘신라한복’이다.
그뿐 아니라 박 대표는 “옷이라는 것이 심을 한 겹 더 받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며, 옷을 만들 때에도 원단을 아까워하지 않고 언제나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요즘은 한복을 일상적으로 입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가게들도 고급화․대형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많은 경우 옷을 제작할 때 공임을 준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업체에서도 원단이 소모되는 것을 막고자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줄여서 옷을 만드는데, 그렇게 되면 감싸주는 맛이 없고 불편해서 오래 입기 힘들다”라고 이야기했다. 또 “한복을 20년 넘게 만들어 오면서 우리 선조들이 옷의 맵시를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모두 명확하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품이 조금 더 들더라도 편안한 옷을 만드는 것이 선조들의 마음가짐을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마음가짐 덕분에 그녀의 가게에는 오랜 기간 왕래하는 단골들이 많다. 먼 길을 찾아오면서 “여기 문 닫으면 갈 곳이 없다”고 너스레를 떠는 손님, 더 오래 건강히 일하시라고 돋보기를 선물해주는 손님도 있고, 근처 초등학교에서는 자국으로 돌아가는 원어민 강사들을 위해 교장선생님이 직접 시간을 내서 주문을 의뢰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통한복 명인의 길을 위해 노력하며
패션디자인 전공한 딸과 함께 ‘신라한복’의 이름 널리 알리고 싶어

이처럼 꾸준한 노력을 통해 전통한복의 미학을 고집하고 있는 박 대표는 30년 이상의 경력을 통해 익혀온 한복 제작의 노하우를 인정받기 위해 명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올해도 명인 심사에 도전할 것이라고 전하는 박 대표는, 조선 초 명나라에서 들어온 장삼(장배자)의 영향을 받은 원삼과 조선시대에 예를 갖춰야 할 때 입는 여자용 예복인 당의 등 다양한 궁중복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신라한복’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고자 한다. 한편 그녀의 딸 역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올해부터 단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전통복식을 다시 배우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4대에 걸쳐 한복의 전통미를 추구해온 것에 이어 탄탄한 학문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신라한복’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향후 시의 지원에 따라 수원 행궁동에 한옥마을이 형성되면 딸과 함께 한복 제작과 관련된 재능기부를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The Korean dress making that has been passed down to 4 generations!”
Park Young-ae, CEO of Silla Hanbok

If you have a chance to visit Suwon, drop by Youngdong Market near Hwaseong Fortress. A number of markets were set up in and around the fortr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era and today they became one single market that is boasting 260 stores with many traditional trades still intact. What makes the market most famous, however, is the Korean dress makers and sellers which take up more than half the stores. Silla Hanbok, among them, comes into a particular attention as it is famous for the 4 generation long family business on which the brand has firmly built high standard of needlework and artistic value. “Interesting to say that I grew up in a hard-up family but I didn’t want to get by Korean dress making like my mother did. So I went up to Seoul and worked there and married. But my husbands’ income was not sufficient so I needed to do something to support. I decided to make the most of my needlework skill which I learned from my mother over shoulders and I worked for 10 years at home ever since. But that actually put me back to the family business interestingly” says Park. So it has driven her life into expertise of Korean dress making for the last 30 years. And she still opens the store the first every morning in Youngdong Market. When in Seoul, Park took a free dress making course just to make her own clothes so that she could save some living costs but it turned out to be of great help to Korean dress making at the end. She got the idea of adding modern elements to the traditional from it and she actually introduced welt pockets on trousers for convenience and applied sophisticated curves and lines in order especially to attract young people who are rather doubtful about wearing the traditional dress. “Adding a seam can give as good a different feel as using quality fabric and this requires attention to detail if the maker is to create a work but not clothes. It is interesting to mention that I found the fact that our ancestors made Korean dress with great accuracy and scientific calculations. So, one must take it into consideration in order to realize the very uniqueness as well as the practicality of Korean dress.” Naturally, a customer became two and the two became many and the many have become regulars today who often give her a pair of glasses to see better or order a special one as a gift for foreigners. Stylistically, Silla Hanbok is credited for Buddhist monk’s robe and ceremonial robe and women’s robe. With these assets as the stronghold, Park is ambitiously challenging for ‘Master of Korean Dress Making’. Meanwhile, her daughter is studying traditional dress at Dankook University Continuing Education Center at the moment after obtaining a degree in fashion design and she is quite ready to pass down the family business as the 5th generation! 

Note: <Power Korea> “rewrites” the Korean article in English “concisely” for native English speakers and staff of foreign missions in Korea.


안정희 기자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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