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지붕·오솔길 등 정겨운 고향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김우식 화백 안정희 기자l승인2016.05.17l수정2016.05.17 17:2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시장풍경

[김우식 화백]
“초가지붕·오솔길 등 정겨운 고향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소박한 우리네 삶을 그리는 경북의 미술 거장  ‘김우식 화백’ 


고향에 대한 그리움, 지난날들은 다 아름답고 그리운 것 밖에 없습니다. 비록 궁핍과 아픔의 역사가 우리들을 고달프게 했지만 그래도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에 대한 소망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꿈에 대한 지구력으로 견디게 했습니다. 이제는 정겹고 감미로운 추억들, 되살릴 수 없는 고향의 오솔길과 민둥산, 다랭이 논밭 이랑사이로 아지랑이, 진달래, 산수유, 살구꽃 등 항상 눈을 감으면 서려오는 가슴을 달래며 작품에 임합니다. (작가노트 중에서)

초가집, 흙두렁 사이 비치는 정겨운 풍경에서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화폭에 담아내

우리네 기억 속에 떠오르는 흙과 짚으로 엮어 만든 초가집은 산과 들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경북 고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김우식 화백은 이런 초가집을 자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화백의 그린 작품의 대부분은 자연의 풍경으로 초가집과 흙두렁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더불어 풀이 한 데 어우러져 쓸쓸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정겨운 장면이 사실적으로 담겨져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시골의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현대 미술 작품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실적으로 예전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은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 화백은 오래 전부터 고향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 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사탕이나 과자 사먹을 돈을 모아서 크레용과 모조지를 사고 그림을 그려나갈 만큼 열정이 불타오르는 작가였다. 한 번은 부친의 서재에서 좋은 종이를 찾아 거기에 그림을 그렸다가 중요한 문서에 그림을 그렸다고 혼나기까지 했다는 일화를 전할 만큼 그에게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열정이 있었다. 김 화백은 중학교 때부터 초가집과 오솔길, 논두렁 등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생활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이어갔는데, 이것은 그의 어린 시절과도 영향이 깊다. 그는 "어머니께서 엄한 편이시라 집에서는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혼나고 마음이 상하면 친구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우리 집은 그 때 기와집이었는데 친구들의 집은 모두 초가집이고, 또 흙뜨락에 함께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히 마음이 풀렸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한다.

태극기, 잔치풍경 등 소재로  ‘대작(大作)’도 풀어내
김 화백의 작품 속엔 따스함과 친숙함으로 잘 배어져 있기도 하지만, 특히 규모 면에서도  '대작'을 그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독도’ 그림을 비롯해 ‘민족의 혼’, ‘꿈의 고향’, ‘시장풍경’ 등이 있다. 초가집 그림 중 가장 큰 것은 가로 5m, 세로 150cm의 작품으로 김 화백의 화실 한편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완성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고 이야기 할 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응집된 그림에는 각자 다른 분위기의 50여 채 초가집이 한 폭의 캔버스 안에 들어있다. 마치 하나의 마을을 그 안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해 압도가 되는 느낌이 들게 한다. 또한 마을에서 열리는 잔치 풍경을 담은 그림도 빼놓을 수 없는 대작 중 하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는 마치 흘러간 시대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지금의 부모 세대들은 어린 시절 마을에서 경사가 있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한 쪽에서는 돼지를 잡고, 한 쪽에서는 술과 노래가 어우러진 잔치가 벌어지는 등 다양한 풍경이 존재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김 화백은 "캔버스에 내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마치 한탄이나 푸념처럼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말한다.

2007년 미우회 작가들과 함께 회상전 개최...
올해 4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칠순기념전' 

김우식 화백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젊은 시절 문예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1945년 윤석중 선생, 김진태 선생, 박목월 선생, 김홍섭(부친)과 함께 아동문학지 '새싹'을 창간한 바 있다. 부친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노력 뿐 아니라 자라나는 새싹인 아이세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새싹'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김 화백의 부친은 또한 50년대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장원 없는 가작 제1선에 당선된 시인 출신이기도 하여,  어쩌면 재능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친은 6.25를 겪으며 민족주의자라고 불리며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었다. 김 화백 역시 부친의 영향을 받으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던 과거를 겪어 오면서 느낀바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회 속에서 문학과 음악은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지만 상대적으로 화가들은 예전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을 마주해야만 했다. 김 화백은 "당시에 화가들 사이에서는 당선을 위해 이른바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풍조가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저 자신의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소 고집스럽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화풍을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고 말했다. 

김 화백은 전쟁 전부터 수많은 동료 화가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대구 근교의 화가들이 결성한 '미우회' 작가들과 함께 네 번의 전시회를 가졌으며, 2007년에는 5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작가들이 다시 모여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서 '옛 화우 반세기전' 회상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또 지난 4월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칠순 기념전’ 을 개최하기도 했는데, 대표작인 초가집 그림부터 유화 스타일의 작품, 민가에서 전해져 오는 호랑이 그림 등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했던 결정체들로 지인의 도움을 받아 특별한 의미를 담아 치뤄낸 전시전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가로
김 화백은 올해로 45년 째 미술계에서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그는 90년대 미협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그 때 김 화백은 어떤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작품은 상아로 만든 찬합이었는데, 주변을 돌아가면서 기와집과 나무 등이 조각되어 있고 바닥은 마치 삼베처럼 가느다랗고 촘촘한 조각이었다는 것. 이것을 보고 있자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를 넘어서는 예술 혼을 발휘하는 작가들이 있다는 생각에 경외감을 가졌다고 한다. 그 때 김 화백은 전통의 예술 혼을 불사르는 작가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는 앞으로 태극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더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국기가 널리 알려져 어떠한 심벌로 이용되는 것처럼 태극기 역시 우리의 정신을 담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4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해온 원로 작가로 그의 작품은 수없이 주변에서 소장하고 수집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작품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젊은 화가들 못지않다. 우리 전통의 문화를 화폭에 담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금도 쉼 없는 발걸음을 옮겨가고 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그림을 요구하는 최근의 세태보다 자연의 파장을 읽고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 함께 호흡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 화백은 오늘도 자신의 그림 인생 중 한 조각을 붙잡아 붓을 들고 있다. 김 화백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작가 정신이 젊은 작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 김우식 작가

[Artist Kim Wu-sik]
Painting a heart-warming home town scene on a canvas
A representative artist in North Gyeongsang Province

Affectionate thatched house and a bank around the field
Painting a beautiful childhood memory on a canvas

Seeing a thatched house made of earth and straws reminds us of a beautiful childhood memory or a trip to a rural area. If you, as a city dweller, do not have a time to visit the countryside to see it again, it might be a good idea to appreciate the works of artist Kim Wu-sik who mainly paints thatched houses surrounded by banks, grass and sunlight. Kim’s works are not as splendid or sophisticated like modern art works but the reality they contain creates a ripple in our heart. Kim liked painting very much since he was a child that he saved the money he received to buy crayons and papers instead of snacks and candies like many other children of his age. He once painted a picture on an important document of his father and was scolded. He liked to paint a thatched house, a path and the ridges between rice paddies. He says “I was often scolded by my strict mother at home. Then I went to my friend’s house to cheer myself up over a talk. My house was a tile-roofed while my friend’s was thatched and I easily became happy again by sitting against the earthen wall of the thatched house.”

Large works themed on the national flag and traditional parties
Kim is as famous for painting larges works as painting relatively small hometown scenes. The representative works of the former include ‘Dokdo’, The National Sprite’, ‘The Home of Dream’ and ‘Market Scene’. The largest one of thatched house, however, is 5m x 1.5m, containing 50 thatched houses which he took 4 years to complete and it is hung on the wall of his studio. You might feel like Kim shifted a whole village on a canvas. Another one of larges works is themed on traditional parties. The scene might be new to young generations but good enough to arouse nostalgia from older generations as a group of people slaughter a pig in a corner, another group of people sing and dance in the opposite corner and children run around the garden. When asked why he creates such big works, Kim answered “I have many story to tell and I want to tell all of it on a one big canvas.”

Holding a retrospective exhibition in 2007
Holding a 70 year old exhibition in April 2016

According to Kim, his father Kim Hong-sup is one of the founding members of children’s literary journal ‘Ssassak (grass, 1945) with Yun Suk-joong, Kim Jin-tae and Park Mok-wol. His father said that they named the journal as such to emphasize the importance of children as the generation to create a better world. His father’s poem once was selected at the Annual Spring Literary Contest hosted by The Seoul Shinmun in the 50s but he also was suffered for being a nationalist during the Korean War. Many writers and musicians regained their artistic value after the war but painters had to face a harsher environment. Kim explains “Many painters around that time painted selling works. But I did not want to compromise with the trend but kept working on my own style.” Kim worked with many of his colleagues before the Korean War. They formed ‘Miwuhoe’ around Daegu City and had held four exhibitions. After 50 years have passed, they gathered again and held a retrospective exhibition at the Cheongsong County Art Museum in 2007 to celebrate Miwuhoe’s 50 years history. Kim also held his 70 year old exhibition last month at the Daegu Culture and Arts Center in which he also displayed his tiger work. 

Unquenchable passion for art
It has been 45 years that Kim devoted his life in painting. He pointed out the exhibition held at the Ancient Palace Museum in Taiwan as one of the most memorable exhibitions in which he participated as a member of the Korean Fine Arts Association in the 90s. The stackable side-dish made of ivory with delicate decorations of thatched houses and tree particles impressed him very much. It was the momentum for Kim to be an artist whose passion in creation never lasts. Currently, he is planning to create a large work with the Korean national flag for the theme to spread Korean culture and art to the world. Many of Kim’s works were sold and collected by many art lovers. Rather than following the trend, Kim diligently moves his brush to depict the realistic beauty of nature. This might be the reason that Kim and his works are still loved by many people. 


<김우식(Kim Woo-Sik)>작가 프로필
개인전 및 초대전 46회
신라 미술대전 초대작가(심사운영위원 역임)
경상북도 도전 초대작가
한국 교육미술학회 초대작가
대구광역시 초대작가
한국전업작가(K.P.A.A.) 회원
대가야미술가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수상경력
해외 평론가상 수상
한국-스리랑카 수교 33주년 스리랑카 대통령 초대(월드코리아 상)
2011년 인도 초대작가상
스위스 스페셜 전시회 우수상
일본(대판) 초대작가상
2015 한국전업미술가협회상
한국의 인물상
사람과 사람(후 이즈 후)
한국을 이끌어가는 사람
주소 : 경북 고령군 성산면 성암로 160-9

 


안정희 기자  honesty5835@naver.com
<저작권자 © 월간파워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정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가장 많이 본 기사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뉴스앤매거진 파워코리아 대표 백종원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62-3번지 2층  |  대표전화 : 02-466-5085  |  팩스 : 02-444-0454
대표메일/제휴광고문의 : bridgekorea@naver.com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백종원(bridgekorea@naver.com)  |  사업자등록번호 : 212-23-25879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종원
Copyright © 2008 - 2020 월간파워코리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