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주라영 설치조각가>
현대인의 불안 감싸 안으며 삶과 죽음, 인식 문제 다뤄
작품 해체 통해 삶의 ‘본질’ 깨닫게 하는 메시지 전달해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아조차 망각한 채 맹목적으로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달려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현대인들의 불안,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허덕거리며 질주할 수밖에 없는 모습은 어쩌면 가엾은 우리 시대의 초상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관계 속에 머무는 사회적 존재이다. 우리를 관찰하고 작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자아를 확인하는 일이다. 더불어 살지 않으면 조화가 깨지고, 타자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없이 각자의 자아를 강하게 무장하는 순간 남는 것은 전쟁과 같은 분쟁뿐이다. 주라영 조각가는 이런 현대의 몰개성적이고 익명적인 군중들이 서로를 짓밟고 넘어지면서 오로지 한 곳만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들을 작품으로 표현해 전시 작품을 한 점, 한 점 관객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매일 조금씩 사라지며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인의 자화상 보여주는 맹목적인 질주
주라영 설치조각가의 작품은 인간의 순수한 본질은 무엇이며, 실존적인 입장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관객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하는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녀의 작품은 획일화가 가져오는 자아 상실의 현장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의 ‘몰개성’과 ‘익명성’은 현대인들을 목전에 둔 단 하나의 목적과 목표만을 향해 내달리게 만든다. 심지어 목적지가 확고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도 일단 맹목적인 질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질주를 계속하는 이들에게 처음부터 목적지가 불투명했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계속 달리면서 처음의 목표는 잊혀져가고 현실 속에서 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일종의 집단 최면이 생겨나게 된다.

주라영 작가의 작품은 청동, 석고붕대, 합성수지, 철 등 재료는 다양하지만 이렇듯 집단 최면 상태에서 한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설치 작업이 주가 된다. 흔히 집단 속에서 나를 잊어버린 몰아의 상태와 집단 최면을 다루는 예술 작품들이 비극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면, 그녀는 이러한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여 관객의 감성적 요소를 건들임으로써 작품에 한 발작 더 다가서게 하여 교감을 시도하고, 우회적으로 사회를 풍자한다. 이 지점에서 그녀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작품의 해체 작업이다.

작품 해체 작업을 컨셉으로 본질 회복 추구
그녀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철학을 갖는다. 첫째는 ‘Here & Now’이며, 둘째는 그로부터 발전한 ‘Beyond Here & Now’이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을 해체라는 전시방법을 통하여 관객과 소통하며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 해체를 통해 주라영 작가는 궁극적으로 삶의 본질을 일깨우고 진정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Here & Now에서 인간의 태생적 욕망과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현대인의 자아 정체성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작업을 했다면 Beyond Here & Now에서는 존재론적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인식의 문제로 전환한다.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인식론의 차원으로 접근한다. 우리는 성장하며 교육받고 세뇌당한 관념으로 세상을 대면하고 그것이 진리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녀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강요 받아온 학습의 결과물로써 인식되어질 뿐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해 보여줌으로써 그치지 않고, 전시기간 동안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소통하며 전시가 끝나는 날까지 작업과정이 진행된다. 설치 방법적으로 작가는 다양한 삶의 패턴으로 살아가는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사람형상을 전시장 안에 가득 채워 놓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그 획일화된 군중 속에서 마치 자신의 모습 하나를 떼어놓 듯 가져가며 서서히 사라지게 하여 전시가 끝나면 텅 비어 있는 빈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 작업까지가 작품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관람객 각자의 손에 의해 설치된 작품이 흩뜨려짐으로써 전시는 완결된다. 주라영 작가만의 설치작업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러한 전시 진행방법은 현대인들 사이에 만연한 ‘집단최면’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와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 여행 등 외국에서 얻은 체험이 작품의 자양분
주라영 작가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기 전인 97년 경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인도의 갠지스 강 주변에 머무는 동안 색다른 경험들을 하게 되었던 것들이 그녀에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고,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그 매력으로 인도의 산티니케탄(Santiniketan)에 위치한 비스바바라티(Visva-Bharati)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4년여를 살면서 작업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주라영 작가의 작품세계는 인도에서의 인상 깊은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인도라는 곳은 그녀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시켜 주었으며, 존재론적 물음을 던져주기에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져 귀국 후, Here & Now라는 타이틀로 2000여명의 군상을 탑 형식으로 쌓는 대형 설치 작업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귀국 후에 바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도 6개월 정도의 적응기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전남의 조계산 주변에 위치한 선암사 입구 마을 회관에 머물며 작업을 했지만, 자살을 결심할 정도의 극심한 우울증과 부침을 겪어야 했다. 그때 그녀는 티베트와 네팔로 훌쩍 여행을 떠난다. 티베트를 여행하던 중 그녀는 독수리에게 시체를 던져주는 전통 장례 풍습인 조장(鳥葬)을 보게 되었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붙들고 죽음까지 생각했던 번뇌를 정리하고 삶에 대해 좀 더 깊게 사색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경험들이 작품의 자양분을 얻는 소중한 계기들이 되었다고 한다.

'인식의 감옥' 에서 탈피해야 해.
국내 주요 전시전 초대 작가 참여, 올 가을 기획 전시 준비해
주라영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식의 전환’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각자의 삶의 인식 시스템에 의해 저장된 정보의 투영일 뿐 실체가 아니다.” 고 밝혔다.

‘Beyond Here & Now-인식의 감옥’이라는 전시를 통해 보여 주었던 작품들을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콘과 같은 커다란 규모로 설치된 이미지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는 세포 단위로 밀집되어 있다. 인식의 대상은 결국 이미지와 정보의 투영이자 그 동안 받아온 정형화된 교육으로 인해 알고 있는 집합일 뿐, 실체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설치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해체 작업은 인간의 관념화 된 이미지에서 즉 인식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의미를 지닌다. 물론 탈출하는 역할은 관객의 몫이다. 언제나 그렇듯 전시기간 중 조금씩 해체되어 결국 그 이미지가 생겨나기 이전의 텅 빈 공간으로 되돌아가며, 관객은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게 된다.

숱한 작품전과 연구 활동을 통해 병행해 온 주라영 작가는 “나는 수행자이다. 수행을 통해 얻은 사색의 결과들을 작품으로 표현한다.”고 말한다. 작업을 통해 작품 속에 삶을 투영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늘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메모하며 아이디어를 스케치한다.  2007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미술과 놀이(Art and Play)’ 전에 초빙작가로 참여해 문화계에서 큰 화제가 된 주라영 작가는 현재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작품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2012년 포항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STEEL LIFE’ 전에도 젊은 작가로 참여해 9미터 규모의 설치 작품을 출품해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2013년 제주도립 미술관에서 열린 “교과서 속 현대미술을 만나다”에서도 이슈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인도 산티니케탄에서의 첫 개인전(석사학위 청구전)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8회째 개인전을 연 주라영 작가의 화두는 언제나 삶의 ‘본질’이다.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존재론적 물성과 자유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에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한다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라영 작가는 올 가을 또 다른 기획 전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간군상으로 공간 채우기와 관객 스스로의 자발적 해체를 통해 작품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한다. 언뜻 차가워 보이는 수지와 철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변함없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라영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주라영(JU RA YOUNG) 작가
juna40@hanmail.net 
Visva-Bharati Kala-Bhavana 석사 졸업(인도), 전남대학교 미술학 박사 졸업 
현재, 전남대 강사, 예술광주 편집장, 광주광역시 미술장식품 심의위원
개인전 8회(인도, 광주, 서울)

주요경력
2013. 광주문화예술상, 오지호미술상 특별상 수상
2013. "교과서 속 현대미술을 만나다",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12. "STEEL LIFE"전, 포항시립미술관, 포항
2009.  현대미술 영상과 설치전 “소통과 멈춤”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08.  광주비엔날레특별전 “모놀로그",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광주
2007.  "미술과 놀이",  예술의 전당, 서울
2007.  포천아시아비엔날레 특별전 참여, 포천.
2003. 제16회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The portrait of modern people in blind pursuit

Ju throws questions to us on the essence of a man, who I am, where I am going and how I live through her works. 

She shows the very spot where loss of ego are found. The society forces us to run for one goal by losing our identity. You still have to run in blind pursuit even if you do not have any goal. We started running because we saw the end of the tunnel. But gradually, running itself becomes the sole purpose in a form of mass hypnotism. 

Ju uses various materials from bronze, plaster bandage, synthetic resins to steel but only to show us to realize why and where we are running. While other artists express the similar sentiment in its tragedy, Ju demonstrates it in humor so that more spectators can sympathize with her message. And this is the point where Ju brought up deconstruction of the works. 

 

Recovering the essence through deconstruction of the works

 

Ju approaches to her works with two ideas: ‘Here & Now’ and ‘Beyond Here & Now’. These ideas are delivered to us through deconstruction of the works. Deconstruction for Ju, and for us, is an emergency exit to self-consciousness. If Here & Now is a message for recovery of identity, Beyond Here & Now suggests us an awakening. Things turn into a different perspective depends on how you perceive. People are trained in one way and believe that is the answer in the society. We see things the way the society force us to see. In this respect, Beyond Here & Now delivers us a wake-up call. 

To enhance her message further, Ju devised a plan to involve the spectators in her exhibitions: sculpted personnels are installed in the exhibition hall. Spectators enter the hall and become one of the personnels. The personnels are taken away one by one by the spectators and eventually the hall becomes empty. Ju then completes her deconstruction. In other words, Ju wakes us up from mass hypnotism through the exhibition. 

 

 

Experience in India for an inspiration 

 

Ju traveled in India in 1997. While staying near the Ganges for a while, she was inspired by different environments and culture. Eager to learn something new, she launched a study at Visva-Bharati University in Santiniketan and obtained a master’s degree during her 4 year stay in India.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many of Ju’ works contain elements of her experience in India. India for her is a country where life and death are nakedly exposed and the questions of our reason of being are thrown into our head. This was resulted in Ju constructing 2,000 crowds of people in pagoda under the title of Here & Now after six months back in the Korean soil. The six months, in particular, was the hardest time for Ju. During her short stay at a village hall near Sunam Temple, Ju suffered much from depression and emotional turmoil to the level of almost committing a suicide. Completely lost a direction of her life, she, all of a sudden, packed and left for Tibet and Nepal. While watching a dead body thrown to an eagle (traditional Tibet funeral ritual), she was struck with awakening and sorted out her anguish. 

 

Escaping from the prison of cognition

 

Ju says “The world we see is the reflection of information saved in our set memory chip.” Beyond Here & Now can be seen as an installation consisting of ubiquitous icons and large scale images. But if we see in detail of the installation, many of us are running in mass. This tells us that what we see is not truth but the icons and images suggested by the society. In this respect, Ju’s deconstruction can be seen as escaping from the prison of cognition. 

Ju says “I meditate everyday. My work is a result of my meditation.” Likewise, Ju reflects her thoughts in her works through meditation. 

 

Meanwhile, Ju became famous when she was invited to ‘Art and Play’ held in Hangaram Art Museum at Seoul Arts Center in 2007 and her works are used in the text book of middle schools in Korea. She also created a sensation by participating in ‘STEE LIFE’ held at Pohang Museum of Steel Art in 2012 with a 9 meter in width installation and ‘Meeting Modern Art in Text Books’ held at Jeju Museum of Art in 2013. Starting with her first solo exhibition in Santiniketan, India, Ju has held 8 solo exhibitions. Ju’s subject is always about ‘essence’. And the essence for Ju means awakening. Ju is currently preparing a new exhibition for this autumn.

홍기인 기자  forum1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