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수흥(李壽興, 1905. 9. 11. ~ 1929. 2. 27)

백종원 기자l승인2015.03.10l수정2015.03.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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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수흥(李壽興, 1905. 9. 11. ~ 1929. 2. 27)

◈ 5척 단신의 청년,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다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수흥 선생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이수흥 선생은 경기도 이천군 읍내면 창전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이일영(李日瑩)으로 본관은 연안이다.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으로 연성군에 봉해진 이곤(李坤)의 후손이 되며, 외암(畏庵) 이식(李拭)의 10대 손이 된다. 이천 출신의 대학자 이식은 숙종 때 학식으로 천거되어 여러 곳의 수령을 지냈으며 영조의 스승이기도 하다. 사후에는 이천군의 사림들이 그의 학덕을 추모하여 사당을 세우기도 했던 명망 있는 인물이다. 이수흥은 이천 공립보통학교를 입학하여 다니다가 13세에 자퇴하였으며, 14세에 입산하여 수년간의 승려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세에 부친의 만류로 하산하였다가 이듬해인 19세에 만주로 건너갔다고 전해진다. 이때가 1923년 3월 말이다. 그는 만주 길림성에서 김좌진이 사관 양성을 목적으로 세운 신명학교에 다닌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만주지역에서는 1922년 8월 30일 대한통의부가 결성되었고, 1923년 2월에는 통의부 주도세력과 대립을 보이던 의병계열이 통의부를 탈퇴하고 새롭게 의군부를 설립하던 때다. 이수흥의 재판기록(소화2년 형공 제1711호)에 의하면, 그는 1923년 7월 말경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여 무장투쟁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생은 경기 이천 출신의 대학자 이식의 후손으로 이천 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한때 입산하여 승려생활을 하였다. 1923년 19세 때 만주로 망명해 통의부와 참의부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참의부는 국내 진공작전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나 1925년 일제의 기습 공격으로 고마령에서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었다. 선생은 독립군 활동이 주춤해지자 조선총독을 비롯한 고관들을 처단함으로써 침체된 무장투쟁의 분위기를 되살리고자 1926년 5월 국내로 들어왔다. 선생은 참의부 제2중대 특무정사 자격으로 황해도 평산을 거쳐 경성에 잠입한 후 동소문파출소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였다. 독립군 자금 모집을 위해 안성 부호의 아들을 처단하고, 이천 현방경찰주재소와 백사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일제 경찰은 선생의 신장이 5척에 불과하다는 단서를 잡고 관내에 거주하던 키 작은 젊은이들 조사하였다. 3천 여 명이 동원된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투쟁을 이어가던 선생은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선생은 3년의 예심 끝에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언도받고,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채 1929년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달의 6·25전쟁영웅 - 구월산의 여장군 이정숙  
이달의 6·25전쟁영웅 최초로 선정된 여성 영웅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은 구월산의 여장군으로 많이 알려진 전쟁영웅이다. 활약상은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 - 1965>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서 생생하게 그려진 바 있다.
이정숙은 1922년 2월에 함흥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25전쟁 직전에 공산군 손에 부모와 남편을 잃고 말았다. 그녀 자신도 복역을 하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서하무장대를 결성하여 무장대원 70여명과 농민들을 진두지휘하며 북한군과 싸워나갔다. 구월산의 유격부대는 일명 동키 제2부대로도 불렸다. 1950년 10월 중순,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과 이도면 등의 반공 청년들로 조직된 연풍부대를 모태로 하여,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의 김종벽 대위가 반공청년들의 자생적 무장조직을 규합하여 1950년 12월 7일에 창설한 유격대다. 처음에는 약 150여 명으로 시작하였지만 이후엔 많은 피난민들이 가담하여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정숙은 구월산 유격부대에 합류한 뒤 김종벽 대위의 보좌관 직책을 맡아 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특히 1951년 1월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이 외에도 공산군 습격을 위한 월사리 반도 상륙작전, 어양리 지역 상륙 작전 등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이정숙 요원은 ‘구월산의 여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공을 인정받아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1960년대 중학교 교과서에 그 활약상이 수록되기도 했다. 
 

Independence activist of the month : Suheung Lee (1905. 9. 11. ~ 1929. 2. 27)

A short young man strikes terror into Japanese heart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Korea Liberation Association, and Independence Hall chose Suheung Lee as the independence activist of the month. Lee was born in Changjeon-ri, Eumnae-Myeon, Ichon County, Gyeonggi Province. His father was Ilyoung Lee, belonged to Yeonan family, and was a descendent of Gon Lee who became Prince Yeonseong on the benefit of his political contribution in Restoration of King Jungjong, and was 10th generation of Sik Lee. The latter one was a scholar born in Icheon, served as chief in various places, and was a teacher of King Youngjo. Confucian scholars built shrine in remembrance of him after he died. Suheung Lee studied at Icheon public school and dropped out of school when he was 13 and went into a mountain to be a monk when 14. He came back to the world on his father's force when 18 and crossed into Manchuria when 19 in March 1923. He is presumed to be active in Shinyeong School built by General Kim Chwa-chin in Jilin Province. Korea Tonguibu was formed on 30 August in 1922 in Manchuria around that time and the group who were discordant with the organization separated and established Uigunbu in February 1923. According to Lee's trial record, he joined in Korea Tonguibu in July 1923 and started to engage in armed struggle. He also joined in Chamuibu which actively did advancing operations to Korea but lost a considerable number of their force by Japanese' surprise attack in 1925. When the activities of Independence Army was withered, he crossed into Korea in May 1926 in an attempt to punish high officials of Japanese General Government in Seoul. He sneaked in Gyeongseong through Pyeongsan in the character of a special soldier of The Second Company and engaged in gunfight with Japanese police at Donsomun Police Station. He punished the son of a rich family in Anseong to create fund for Independence Army and attacked Icheon Hyeonbang Police Station and Baeksa Town Office. The Japanese police got the hint that he was rather a short young man and launched an investigation with 3,000 staff. Lee eventually was arrested after a tip-off from one of his colleagues, sentenced to death and died in 1929. The Korean government conferred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dependence Medal to Lee in 1962. 

Korean War hero of the month : the female general of Kuwol Mountain Jungsook Lee
Lee is the first woman chosen as a Korean War hero of the month. Her operation as a guerrilla was made into a movie called 'Bloody Kuwol Mountain (1965)' and into a manga called 'Kuwol Mountain Guerrilla' by Wooyoung Ko. Lee was born in Hamhung in February 1922 but lost her parents and husband by the Communist Army before Korean War. She was put into prison, escaped, formed Seoha Armed Force in October 1950 in Anak County, Hwanghae Province, commanded 70 armed forces and farmers, and fought against the Communist Army. Kuwol Mountain Guerrilla was called Donkey The Second Army. It was formed by Captain Jongbyeok Kim on 7 December 1950 by gathering scattered voluntary armies including Yeonpoong Army. It was started with only 150 and the number was significantly increased when evacuees joined in. After joining Kuwol Mountain Guerrilla, Lee took the aide role to the captain and made a significant contribution. She particularly contributed to saving 89 soldiers of Jaeryeong Guerrilla by getting through the energy territories in disguise as a country woman crossing 40km on foot. She also participated in landing operations at Wolsari Peninsular and Eoyang-ri area. Her contribution made her gain the nickname 'The Female General of Kuwol Mountain'. She was rewarded a citation from the Army Chief of Staff and her operations were in the middle school textbook in the 60s.

                      

 

 


백종원 기자  bridg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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