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 황상규 [1890~1931]

◈ 육탄혈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라 ◈ 백종원 기자l승인201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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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 : 황상규 [1890~1931] 


◈ 육탄혈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라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의열단을 조직한 황상규 선생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10대 말부터 노동야학과 사립학교 교사를 역임하다 1913년 이후 일합사, 광복단, 대한광복회 등의 비밀결사에 가담하여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다. 그 후 만주로 망명한 선생은 1919년 길림에서 대한독립의군부 및 조선독립군정사 조직에 참여하여 재무책임자가 되었고, 처조카인 김원봉을 조력자로 삼아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할 청년결사대 조직인 의열단을 창단하였다. 선생은 의열단의 국내 적 기관 총공격 거사에 직접 참여하고자 밀입국해 거사준비를 진행하던 중 1920년 여름에 피체되어 7년 징역형을 받았다. 1926년 봄에 출옥한 선생은 밀양의 지역사회운동에 진력하면서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밀양지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재직하였다. 1929년 6월 중앙본부의 의결기구 및 집행부 간부가 되어 광주학생운동의 진상을 조사하고 민중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던 중 갑작스런 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육탄혈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고자 의열투쟁을 전개한 선생의 뜻을 기려 2015년 1월 22일(목)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했다. 또한, 내년 1월 한 달 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6∙25전쟁영웅 - 김홍일 중장 (1898.9.23~1980.8.8)  상훈 : 태극무공훈장
2015년 처음으로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한강 방어선에서 북한군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김홍일 육군 중장이 선정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 우리 국군은 진격해오는 북한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남하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김홍일 장군은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웠다. 장군은 후퇴하던 국군을 결집하여 3개 혼성시단을 편성한 뒤 한강 이남에 24km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여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적의 전차 부대에 밀려 후퇴하고 말았지만, 수도권의 국군 주력을 초반에 섬멸하려던 북한군의 작전 계획에 일대 차질을 초래하여 국군이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군의 전략적 후퇴와 미 지상군의 참전 등 차후 작전을 위한 전기가 되었다. 이후 장군은 제1군단장에 올라 금강과 소백산맥 일대에 새로운 저지선을 형성하여 진천 남쪽 봉화산-문안산 일대에서 전차와 포병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2사단의 남침을 5일 동안 저지하여 적에게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낙동강전선으로 철수, 방어에 돌입한 후에도 기계-안강-영덕-포항 일대에 침공해온 북한군에 역습포위작전을 전개하여 적을 비학산 방면으로 격퇴하는 공을 세웠다. 이 전투로 제1군단은 기계와 포항지역 북방으로 후퇴한 북한군을 추격하여 다음 단계의 반격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김홍일 장군은 불리한 전력과 전세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에는 육군종합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전시에 급격히 소요가 증대되는 육군 간부의 양성에 전념하다가 1951년 3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Independence activist of the month : Sangkyu Hwang [1890 ~ 1931]


◈Complete the country's independence with hand-to-hand combat◈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Korea Liberation Association and Independence Hall chose Sangkyu Hwang, who formed a heroic group, as the independence activist of the month.  He was born in Miyrang, worked as a teacher in labor night school and private school, and started independence movement by participating in Ilhapsa, Liberation Corps, and the Korean Liberation Association. He fled to Manchuria and became the financial officer of Korea Liberation Uigunbu and Korea Independence Military Government in Jílín in 1919, and formed the heroic group with the help of his wife's nephew. He smuggled himself into Korea to plan an uprising but was arrested and sentenced to 7 year's imprisonment in the summer of 1920. When he came out of prison in 1926, he devoted himself to community movement in Miyrang and established Miyrang branch of Shinganhae and served as the head. In June 1929, he investigated Gwangju Student Movement as the executive of the central headquarters's legislative organization and executive department, and held mass meetings but, died suddenly by an illness. The government conferred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dependence Medal to Hwang in 1963.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held an academic lecture for his distinguished services at Kim Koo Museum & Library on 22 January 2015. Also, a photo exhibition was held at Independence Hall and Seodaemun Prison History Hall during January. 
The Korean War hero of the month - lieutenant general Hongil Kim (1898.9.23~1980.8.8) Decoration : Taeguk Order of Military Merit
Lieutenant general Hongil Kim, who successfully blocked the North Korean army on the Han River frontier, was chosen as the Korean War hero of the month. The S. Korean army had to retreat to the south by the advancing forces of the North Korean army when the war broke out. Kim was appointed as the commander of Siheung zone battle to fight back against the enemy. He united the retreating army to form three Hongsung divisions and built 24km of defence line along the south of the Han River to block the enemy. The national army eventually had to retreat at this battle by enemy's tank forces but they delayed the enemy's operational plan and made time for the national army's strategic retreat and the participation of the US forces. He took the commender's role of the first corps and formed a new defence line around Bonghwa Mountain and Munan Mountain (south of Jincheon) and delayed the enemy armed with tank and artillery for five days. He carried out an encircling operation by counterattack around Kigye, Angang, Yeongdeok and Pohang when retreated to the Nakdong River, and drove the enemy back to Bihak Mountain. The first corps chased the enemy to Kigye and Pohang and carried out counterattack operations. He then inaugurated as the chancelor of Military Academy and devoted himself to fostering army officials and later started to serve as a lieutenant general from March 1951.
 


백종원 기자  bridg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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